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재정(1944) (문단 편집) === 정치인 시절 === 1999년 [[국민의 정부]] 시절 정계에 입문하여, 2000년 [[새천년민주당]]이 창당하였을 때 초대 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새천년민주당]] [[전국구]] 10번으로 공천받아 당선되었으며, 교육위원회 간사 및 당 상임고문을 지냈다. 이후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의 유세 연수 본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특히 그 해 8월 16일 민주당 국회의원/지구당 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반노측 인사들이 노무현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자,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9217|"(노무현 후보는) 국민이 뽑아준 후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를 믿고 보호하고 지원해줘야 할 책임이 있다."]]'''는 발언을 했고 마침내 노무현이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안희정과 더불어 대선 시기의 불법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고, 2004년 3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원래대로라면 의원직을 상실하지만 이미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서 민주당을 탈당해 전국구 의원직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2004년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되어 2년간 재직하였고, 2005년 [[광복절 특사]]에서 [[이상수(정치인)|이상수]]와 함께 특별사면, 복권되었다.[* 당시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에게 맥주를 맞는 일을 겪기도 했다. 원래 축사를 했어야 하는데 그게 생략되자 앙심을 품은 박 의원이 사고를 친 것.] 2006년에는 [[정동영]][* 정동영은 통일부 장관에서 물러나 열린우리당에 복귀하여 제4회 지방선거를 이끌 당 의장에 선출되었으나 알다시피 시원하게 말아먹고 사퇴한다.]의 뒤를 이어 제33대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통일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중단되었던 남북 장관급 회담을 재개하는 한편, 남북 철도를 개통하고 열차 시험 운행은 물론, 남북 열차 정기 운행을 이룩하는데 주무 장관으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2007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및 [[10.4 남북 공동 선언]]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이때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남북정상회담 준비 기획단장으로 정상회담의 준비 과정부터 정상회담 진행과 배석 및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실무를 책임지고 총괄하였다. 장관 재임 기간 동안 남북관계는 모든 기록을 경신하여 금강산 관광, 개성관광, 개성공업지구의 활성화와 남북 경제 협력의 확대 등 모든 분야에서 큰 진전과 발전을 이룩하였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에 결성된 [[국민참여당]]의 초대 당 대표를 역임했다.[* 흔히 국민참여당을 [[유시민]] 당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유시민은 엄밀히 말해 참여당 설립 과정에는 큰 역할을 하지 않았으며, 창당 도중에 참여해 참여당의 인지도를 높이고 2대 대표를 역임한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으로 대통합한 뒤에는 통합진보당 상임고문으로만 남아있다가 부정경선 사태 이후인 2012년 6월에 탈당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참여당]] 소속으로 [[충청북도지사]] 후보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2008년)|민주당]] [[이시종]] 후보와 단일화하여 사퇴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교육감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2위로 낙선한 후보는 한나라당 내에서도 신지호와 더불어 [[뉴라이트(대한민국)|뉴라이트]]로 유명한 인물이었던 [[조전혁]] 前 의원이었다.[* 조 前 의원은 자신이 국회의원 시절에 했던 전교조 명단 공개를 공약으로 내걸었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교육감 재선에 도전했고, 진보 진영이 분열된 상황이었음에도[* 이재정 교육감 본인이 진보 진영 단일화를 거부했다. 현직 교육감이 특정 진영의 단일화에 참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새로 보수 진영 후보로 출마한 [[임해규]] 前 의원과, 단일화 실패로 독자 출마한 진보 진영 송주명 한신대 교수를 꺾고 재선에 성공한다. 정치 활동과는 별도로 노인들을 위한 자서전 집필 및 장례식장에서의 조문보를 작성하는 협동조합 은빛기획의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며 2011년 이후 노무현 재단의 이사로도 재직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