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정기 (문단 편집) === 초기 일생 === 732년, [[고구려]] 유민들이 대규모로 군집되어 있었던 [[당나라]]의 영주[* 오늘날의 [[랴오닝성]] [[차오양시]]]에서 고구려 유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758년, [[안사의 난]] 당시에 [[평로]]절도사인 왕현지가 병사하자 이정기는 왕현지의 아들이 절도사가 될 것을 염려하여 왕현지의 아들을 살해하고, 같은 고구려 유민이자 [[고종사촌]]형인 [[후희일]]을 평로절도사에 추대한 후 자신은 그 부장의 지위에 올라섰다. 이후 공격해오는 [[해족]]의 군대와 [[안녹산]]군을 피해 산동 지역의 청주를 점령하고, 청주 절도부까지 장악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정기는 젊은 나이에 무력이 상당하고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위구르]] 장수와 벌인 결투의 일화에서[*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이정기가 날린 주먹 한 방에 쓰러져 그만 오줌까지 지렸고, 이후로 쪽팔린 나머지 다시는 나서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위구르 제국]]은 [[돌궐]]을 대신해 중앙아시아의 교역망을 장악했으며, 당 조정이 [[안사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했던 원군 요청을 빌미로 [[장안]]에까지 들어와 [[약탈]]을 저질렀다. 또한 연회에서 [[덕종(당)|당나라 황족]]에게 "너 내 앞에서 춤 한 번 춰 봐"라고 주정을 부리는데도 당 조정이 어떻게 할 수 없었을 정도로 쩔쩔매는 상대였다.]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여러 활동에서 병사들의 신망을 얻게 되었으며 이를 시기한 [[후희일]]이 이정기를 제거하려고 하자 오히려 [[후희일]]이 역관광을 당했다. 그 결과 이정기는 병사들이 추대한 최초의 절도사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