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정기 (문단 편집) === 세력가가 되다 === 절도사 취임 이후 이정기는 본격적으로 [[산동]] 지역에 독자적인 세력의 구축을 개시했으며 당 조정으로부터 절도사의 지위와 [[발해]], [[신라]] 양국의 무역 독점권을 획득하여 경제적인 부를 챙겼다. 원래 [[한중일]]간의 무역은 [[8세기]]까지는 공무역이 대세였지만 [[9세기]]에 들어 [[당나라|당]], [[신라]], [[일본]]의 [[왕권]]과 국가 장악력이 동시에 떨어지면서 사무역 위주로 개편되었다. 이후 위박절도사 전승사가 기세를 떨치게 되었는데 [[안녹산]] 시절부터 절도사 자리에 올라 기반도 튼튼해서 이정기를 비롯한 주변 절도사들을 우습게 봤다. 그런데 이정기가 이를 토벌하여 세력을 강화했다. 전승사는 이후 기세가 꺾였고 이정기와 곧 [[정략결혼|결혼동맹]]을 맺게 되었다. 이정기는 이영요(李靈曜)가 일으킨 반란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명분으로 삼아 영토를 확장하여, 5개 주를 추가로 획득해 '''15개 주에 달하는 산둥성 지역의 (당시하남) 최대의 [[절도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때 이영요 토벌이 중요했던 건 단순히 5개 주를 더 넓힌 것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대운하]]에 대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까지 영토를 확장한 데 있었다. 이영요는 훗날 이정기가 보여주는 '''[[대운하]]를 끊고 당 황실를 협박하기'''를 처음으로 보여준 인물이었다. 이에 조정은 이정기의 힘을 빌려 하북과 하남 일대의 [[절도사]]들을 통제하고자 노력했고, 이 일환으로 [[재상]]에 해당하는 [[삼공]]의 지위와 종성인 이씨를 하사했다. 이후 이정기는 발해의 법제와 세제를 받아들여 활용하고, 동시에 수도를 운주로 옮겨 당 조정을 위협하려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등 독립 세력으로서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냈다. ||[[파일:attachment/이정기/chichungbunjin.jpg|width=10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