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정기 (문단 편집) == 평가 == 이처럼 당 제국의 동쪽에서 강력한 세력을 떨쳤던 이정기는 [[고선지]], [[왕사례]]와 더불어 대표적인 [[고구려]] 유민 출신 고위 장교였으며, 동시에 산동 지방에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여 반(半) 독립국을 세우고, 당 조정에 도전한 독특한 인물이었다. 한편 정통성 확보의 명분으로 당나라의 종성인 이씨를 하사받는 등 이정기가 [[고구려]] 계승의식을 지니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지만, 그가 세운 치청 번진과 이후의 제 왕조는 [[발해]]와 [[고구려]] 등의 영향을 받은 문화와 법제, 관제, 세제를 이용하고 있어 어느 정도의 계승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많은 인물이다. 그러나 [[제나라#s-7|제(齊)나라]]가 55년 동안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정기의 능력이 아니라 바다 건너의 [[발해]]가 이정기와 그 가문의 뒤를 봐주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도 많다. 당시 [[당나라]]는 안사의 대란을 어느 정도 진압했고 게다가 [[곽자의]]라는 불패의 [[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당나라가 마음만 먹었다면 토벌할 수 있었지만 당시 이정기에게 발해가 중요 군사물자인 말을 대놓고 지원하고 있었다. 게다가 [[무왕(발해)|무왕]] 시기 대둔산 전투와 등주성 전투에서 발해에게 패배한 경험이 있었던 당나라 입장에서는 한창 [[말갈족|말갈 부족]]들을 복속하며 잘나가던 발해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이정기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