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종걸 (문단 편집) === 정치 경력 ===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선거구)|안양시 만안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자유민주연합]] [[김일주]]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새천년민주당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노무현]]을 지지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참고로 이때부터 2012년까지 내리 경쟁후보로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정용대]] 후보가 나섰으나 매번 졌다.] 이후 2013년까지 [[대한민국농구협회|대한농구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를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가을,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이명박|MB]]의 졸개"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유인촌 장관이 "[[찍지마|찍지 마 X발]]"이라는 표현을 하게 만들었다.[* 다만 당시 유인촌의 욕설이 임팩트가 워낙 강했는데다 지금과 달리 이종걸은 저때만 해도 전국적인 인지도가 높지 않아서 이종걸이 사전에 무슨 행위를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5년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를 주도했으며 3월 2일 마지막 주자로 나와 [[대한민국 국회의원]] 단독 연설론 가장 오래 발언한(12시간 32분) 인물이 되었다. 그동안 [[문재인]] 대표와 의견 대립이 많았고,[* 이종걸과 문재인은 같은 당 소속이지만, 이종걸은 당 내의 대표적인 [[비문재인]] 의원이라서 문재인과는 사실상 [[정적]]이나 마찬가지다.] 원내대표가 2달 가까이, 당내 업무를 거절한 것은 당시 진보진영 대다수가 비판했던 일이다. 필리버스터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되었다는 의견이 많고,[* 필리버스터 철회 명분이 무엇이었든 간에, 절차로 보면 김종인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철회 요구를 한 터라, 당 지지 세력 및 당내 강경파를 달래기 위해 원내대표로서 고육지책을 쓴 걸로 보면 될 것이다.] 새삼스레 선친들의 독립운동 행적이 재조명 되기도 했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만안구]]에서 시, 도의원을 지낸 새누리당 장경순 후보[* 17, 18, 19대 선거에서 모두 패한 정용대 후보는 결국 공천을 받지 못했다.]와 맞붙었다. 투표 전 여론조사에서는 별로 상황이 좋지 못했으나 개표 결과 45.4%를 득표해 8,762표차로 이기고 5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2016년 4월 15일 비상대책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와 함께 비주류로 분류되는 [[김종인]], [[박영선]] 의원 등의 만류에도 7월 29일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로 출마하였고, 8월 5일 당 대표 예비경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8월 27일 본 전당대회에서 친문 세력의 지원을 받은 [[추미애]]에 밀려 패하였다. 그후 19대 대선 경선에서는 [[이재명]] 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그렇지만 [[문재인]]이 후보로 선출되자 문캠에 합류했다. 합류 후에는 정력적으로 대선에서 활동했으며, 특히 대선토론 당시 [[유승민]]에게서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냐?"라는 공세에 대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반박했다. 특히, 이종걸과 문재인이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더 주목받았다. [[https://www.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521275371250135&id=100001030592793|해당 글의 페이스북 원본 링크]] [[파일:1OEPZ2AUDS_4.jpg]]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지역구 숙원사업인 박달동 탄약고 이전/지하화, 탄약부대 이전부지를 포함한 130만평에 첨단영상정보산업 직접단지 조성을 위해 [[방송통신위원회]]와 [[국방위원회]]에서 적극적 활동했으며 오랜 동안 인내와 끈기로 만안이 새롭게 변화하는 스마트벨리 프로젝트를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게 하였다(이종걸의 노력으로 문재인정부의 국정운영과제, 이재명경기도지사 공약화). 그러나 국회 예산과 법률제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갖은 5선의 중진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사업으로 이종걸의원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6월 21일 새 당대표를 뽑는 8.25 전당대회 출마를 당내에서 가장 먼저 공식화했다. 하지만 컷오프 당하면서 결선까지 진출하지는 못했다. 2018년 8월 16일부터 트위터를 재개했는데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간단하게 작성하는 식으로 트윗을 게재하고 있다. 워낙 사이다식으로 작성하기 때문에 '폭트남(폭풍트윗남) 이종걸'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이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및 당원들 사이에서는 조상신 [[이회영]]께서 강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농담조의 의견들도 있을 정도. 2019년 9월 28일 [[조국 수호 집회]]에 참석하여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 "조국을 통해 검찰개혁 이루자" 등의 발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통일 정책과 검찰개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였고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대부분 의원들이 지역구 관리에 전념하여야 할 때, 여러 방송사의 TV토론, 언론 인터뷰 등에 출연하여 평소 소신에 따라 발언함으로써 민주당과 문재인정부에 큰 힘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2020년 2월 민주당 경선에서 본인의 보좌관이었던 [[강득구]]에게 밀려 탈락했다. 2020년 3월 24일, [[더불어시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는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 "시민을 위하여"에 참가하기로 결정하고 이 당의 기호를 앞으로 옮기기 위한 작업이다. 이종걸 외에 7명의 불출마 의원들이 합류함으로써 더불어시민당은 [[21대 총선]]에서 법률상 원내 제5당이 되어 기호 5번을 부여 받았다. 이후에는 더불어민주당 일반고문역을 맡고는 있으나, 정치 관련 인사나 행사에는 전혀 접촉하지 않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