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종룡 (문단 편집) === 알바왕 시기 === 마음을 다잡고, [[술]], [[담배]], [[노름]]을 끊었다. 그가 처음부터 아르바이트로 빚을 갚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임시방편으로 일하고자 했지만 주민등록이 말소된 그를 고용해줄 정상적인 직장이 없다. 거기다가 [[고졸]] 학력에 변변한 기술 없는 40대 남성이라 노무직, 일용직도 구하기 힘들다. 심지어 공사판에 가도 제대로 된 기술이 없어 인부들의 심부름만 했다. 그래서 그는 2008년 경 주민등록을 회복하기 전에는 아르바이트 외에는 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운전면허]]와 [[현대 스타렉스|스타렉스 승합차]]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직장이 구해지지 않자 [[목욕탕]] 청소 아르바이트부터 도전했다. 하지만 집에서 목욕탕 청소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40평도 넘는 대중목욕탕 청소를 하려니 시간과 힘이 엄청나게 들 뿐 잘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집의 목욕탕을 연습 삼아 청소해보려 하자, 부인이 "그렇게 막 하면 돼? 순서를 정해야지!" 하고 말했다. 집 청소를 연습해보면서 목욕탕 청소 법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새벽에 신문 배달과 저녁 목욕탕 청소를 하고 한 달에 150만 원 남짓을 벌었지만 조금이나마 수입이 생기자 다시 음주와 도박에 빠졌다. 점점 집에 술에 취한 채로 들어가는 일이 빈번해지고, 한번은 이틀 밤을 화투장을 들고 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전기와 가스가 나가 컴컴한 거실에서 흐느껴 우는 부인을 발견하고는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이 고생하고 있다고 다시 깨달았다. 그 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전기장판이 작동하지 않자 방이 매우 추웠다. 3일 뒤, 그는 펜치를 가져와 '''스스로 [[송곳니]] [[발치|2개를 뽑았다]]'''. 이 정도로 혹독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 과거의 자신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피가 철철 나고 눈물이 흘러서 한참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그 후로 나약해질 때마다 뽑은 송곳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졌다. 생전 그가 잘 웃지 않았던 이유였다. 매일 아침 이를 닦을 때 혀로 빈자리를 훑으며 의지를 다시금 다졌다. 그때부터 그는 아르바이트도 [[직장]]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고, 혹여나 나쁜 습관들이 다시 도질까 아르바이트 개수를 늘려서 몸이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는 7개로 늘어났다. [[목욕탕]] 청소, 떡 배달, 신문 배달, 학원 차량 운영, 폐지 줍기 등 근면과 성실, 시간 엄수를 무기 삼아 하루 24시간 중 2시간 잠을 자고 22시간 노동을 했다. 신문 배달 70만 원, 목욕탕 청소 60 ~ 80만 원, 학원차 운전 70만 ~ 80만 원, 떡 배달 150만 ~ 180만 원. 여기에 신문 판촉 수당 및 폐지 판돈을 합치면 세후 450만 원 정도 생겼고, [[스타렉스]]의 유류비가 100만 원 정도 들어서 남은 돈은 350만 원이다. 빚 갚기 직전에는 550만 원이었다. 사우나 청소 60만 원, 도시락 60만원, 학원차 운전 60만 원, 신문 속지 작업 30만 원, xxx 신문 발송 80만 원, 신문 배달 3곳 합쳐서 100만 원, 전단지 배포 30만 원, 떡 배달 70만 원, 신문 판촉 수당 30만 원. |당시 그의 일과| 06:30 - 09:30 || 떡 배달 준비 및 3군데 마트에 떡 배송. || || 09:30 - 11:30 || 떡 도시락 포장 작업 || || 11:30 - 12:30 || 한국GM 군산공장[* '군산 대우자동차'. 2018년 5월 말을 끝으로 폐쇄되었다.] 떡 배달 || || 12:30 - 13:00 || 빈 시간 || || 13:00 - 20:30 || 태권도 학원 차량 운전 || || 20:30 - 23:30 || 떡 포장 작업 및 한국GM 군산공장 야간 배달 || || 23:30 - 24:00 || 빈 시간. 목욕탕 보일러실에서 잠을 잔다. || || 24:00 - 02:00 || 목욕탕 청소 || || 02:00 - 03:30 || 배달할 신문에 광고지를 삽입하는 작업. || || 03:30 - 05:00 || 신문 배달 || || 05:00 - 06:00 || 신문 배달이 끝나면 집에 들러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 || 06:00 - 06:30 || 빈 시간. 떡 공장으로 이동. || ||<-2><:> (식사와 취침은 중간 중간에 빈 시간을 이용한다) || 방송에 출연하던 날은 4개의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실제로는 요일에 따라 아르바이트가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1주일을 통틀어서 7개를 한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할 때는 10개도 했다. 차량을 사용한 아르바이트가 많기 때문에 하루 400km 정도를 이동했다. 전주에서 군산까지 떡배달을 할 때 [[졸음운전]]을 했다가는 큰일나므로 차 위에 올라가서 몸을 흔들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의 방법으로 잠을 깨웠다.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운전하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2009년]]에 [[GM대우]]가 경영난으로 떡 배달 계약을 해지했을 때도 그는 곧바로 다른 아르바이트로 대체하는 등 절대 쉬는 법이 없었다. 그 외에 [[넝마주이|폐지 수집]]으로 부수입도 올렸다. 예상보다 아르바이트가 30분 정도 빨리 끝날 때면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팔았다. 월 2톤 가량 주워 월 20만 원 정도를 받았다. 결국 2008년 10월 29일 마침내 10년에 걸쳐 3억 5천만 원의 빚을 모두 갚았다. 그는 마지막 빚을 송금하면서 오열했다. 빚을 다 갚았다는 기쁨도 있었겠지만, 빚을 만든 것에 대한 후회, 10년 간 말 그대로 '쉬지 않고' 일했던 역경, 사업을 하던 시절 생각 등으로 온갖 감정이 몰아쳤을 것이다. [[파일:external/ilyo.co.kr/1391737490710100.jpg]] ▲ 마지막 남은 빚 100만 원을 송금하면서 총 3억 5천만 원을 모두 갚는 이종룡 깜깜한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다가 넘어져 피가 철철 흐르는 무릎을 붙잡고 주저 앉아 울기도 했다. 죽도록 고생만 하고 돈 한 푼 못 받은 채 잘린 적도 부지기수. 추운 겨울 젖은 신발을 신고 배달을 할 때에는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처음 2년 동안은 고생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운 게 3년 정도였다. 그러다 2004년 쯤부터 떡집 공장 주인 아주머니가 후에 그의 딱한 사정을 알고 아침밥을 떡으로 주기 시작했다. 그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식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밥먹는 것과 아르바이트 시간 엄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는 그는 항상 후자를 선택했다.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은 후 달리면서 컵라면을 먹은 결과 제시간에 도착한 적도 있다. [[컴맹|컴퓨터를 거의 모르다 보니]] 모든 아르바이트 구인 정보는 생활 정보지에서 얻었다. 아르바이트의 특성상 언제든지 일감이 떨어져서 잘릴 수 있기 때문에 생활 정보지를 보면서 조건이 좋은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을 중요시했다. 이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아르바이트 장소는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잡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떡 공장, 학원, 목욕탕 모두 그의 승합차로 5분 이내 거리에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