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종현(농구선수)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신장 203cm에 윙스팬 '''223cm'''이라는 압도적인 신체사이즈를 무기로 한 정통 빅맨이다. 신장 자체도 아시아권에서는 좋은 사이즈이며 윙스팬은 NBA의 7피트 센터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신장대비 리치가 길기로 유명한 [[카와이 레너드]]가 약 201cm 신장에 221cm의 윙스팬을 가지고 있다.] 고교~대학시절에는 신장 대비 기동성, 활동량도 준수해 압도적으로 골 밑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려대 시절에는 앨리웁 덩크 시도시, 팔꿈치가 림 위까지 올라갈 정도로 압도적인 높이를 자랑했다. 압도적인 신체조건 덕분에 아마추어 시절부터 국가대표에 꾸준히 승선하며 많은 기대를 모았고, 높은 리치와 정확한 타이밍으로 블록슛을 찍어내며 수비에서는 일찍이 포텐셜을 드러냈다.[*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에서 이종현은 경기당 평균 2.6개의 블록슛을 기록하며, 대회 전체 블록슛 1위를 차지했다.] 프로 데뷔 이후 초창기에는 사이즈를 이용해 용병들과 겨루는 장면도 많이 나왔다. 어시스트 패스를 받아 간결한 마무리와 훅슛을 이용한 골밑 득점, 종종 던지는 미들레인지 점퍼 등을 이용해 시즌 평균득점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가장 큰 단점은 아쉬운 웨이트와 포스트에서 버티는 힘이 아쉽다는 것. 국내 빅맨들 중 힘이 약한 편은 아니지만, 타고난 프레임에 비해서 웨이트은 좋은 편이 아니다. 아마추어 시절 약점이라고 평가받았던 웨이트를 보완하기 위해, 프로 진출 이전 성급한 벌크업을 한 것이 독이 되었다. 흔히 말하는 살만 찌우는 벌크업의 안 좋은 예로, 활동량과 순발력을 잃고 되려 부상만 늘어났다.[* 일각에서는 고려대의 아마추어적인 시스템을 봤을 때, 벌크업 과정 또한 체계적이지 못했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또한 아마추어 시절에 비해 크게 발전하지 못한 스킬셋도 단점이라고 평가받는다. 과거 [[유재학]] 감독이 대표팀 시절 대학생이던 [[김종규(농구)|김종규]]와 이종현에게는 미드레인지 점퍼를 보완하라고 주문을 한 적이 있다. 이듬해 확연히 발전한 김종규에 비해 이종현은 답보 상태를 보이며, 유재학 감독이 '게으르다'고 공개적인 혹평을 하기도 했다. 점퍼뿐 아니라 빅맨에게 필요한 여러가지 스킬의 완성도가 높지는 않은 상태이다. 종종 나오는 순간적인 스핀 무브나 페이크, 업 앤 언더 등 번뜩이는 움직임을 보면 분명 공격 센스는 존재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빈도가 적다는 것. 대학 시절과는 달리 프로에서는 신체적 이점만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단점이 더욱 크게 드러났다.[* 애초에 아마추어 동호회 리그도 아니고 대학에서도 난다긴다 하던 선수들이 들어가거나 혹은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이 프로 리그인데 그런 곳에서 단순히 체격이 좋다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있을리가....][* 당장 이종현 본인보다도 키가 큰 김종규도 단순한 신체적 이점만 가지고는 프로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종현의 고전은 예정된 일이었다!] 아마시절 수비에서는 헷지를 깊게 나오고 체이스다운 블락을 보여주는 등 기동력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프로진출 이후에는 높이를 바탕으로 페인트존 위주로 틀어막고 매치업 상대 봉쇄에 집중하는 전통적인 [[센터(농구)|센터]]의 수비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종현은 아마 시절부터 역대급 포텐셜이라고 모두가 인정하는 선수였다. 고려대 시절에는 대학농구리그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는 본인보다 피지컬, 실력에서 밀리는 센터들을 상대로 편하게 플레이 한 결과였다. 청소년기 라이벌이던 왕제린과 한 수 아래이던 저우치가 같은 시기에 크게 성장한 데 비해 이종현의 대학 시절은 선수 개인의 성장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대학 시절 4년 동안 오히려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아마추어 시절 체계적인 몸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더욱 큰 문제를 야기했다. 115kg까지 벌크업에 성공했지만 단시간에 체중을 크게 증가시켜버리는 바람에 이는 신체에 부하만 커졌고 결국 졸업시즌 중반에 발등 피로골절이 터지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부상 중에 졸업전 마지막 연고전 출전을 강행하며 부상회복이 더뎌졌다는 것이다. 이는 모비스 입단 후 추가 3개월을 날려먹는 매우 무모한 선택이 되었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들이 결국 선수 본인에게 부메랑이 되어, 프로 2년차 부터 차례로 아킬레스건 파열, 슬개골 파열, 십자인대 파열, 어깨부상 등 큰 부상을 차례로 당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10분정도 소화할 수 있는 백업역할 이상은 기대하기 힘든 선수가 되었다. [* 사실 이정도 부상을 프로 데뷔부터 7시즌 내내 달고 살고도 은퇴하지 않은건 이종현의 강한 의지와 엄청난 노력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즉, 이종현이 코트에서 뛰는건 기적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과언이 아니라고 봐도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