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주노 (문단 편집) === 해체 직후 ===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후 1996년부터 [[KBS 2FM]]에서 '이주노의 FM인기가요'의 DJ로 활약했다. 밤 10시 라디오 프로그램의 최강자였던 [[MBC]] '[[별이 빛나는 밤에]]', 그것도 초인기 DJ [[이문세]]와 경쟁했다. 당시 수도권에서는 [[별이 빛나는 밤에|별밤]]의 인기가 단연 독보적이었으나, 지방에서는 [[별이 빛나는 밤에|별밤]]을 지역 MC가 진행했기 때문에[* [[별이 빛나는 밤에|별밤]]의 전국방송화는 2014년에 완료됐다.] FM인기가요가 인기가 더 높았다.[* 당시에는 밤 10시에 지방에서도 [[KBS 2FM|2FM]]을 릴레이하던 시기였다(2001년 가을 개편 후 사실상 [[KBS 1FM|1FM]]화됐다). 물론 일부 지역에는 지역방송을 하기도 했는데 음악FM 주파수가 지역마다 많아서 다른 지역 주파수로 우회해서 들을 수 있었다. 지방에서 공개방송을 하기도 하였는데, 예를 들면 지금은 [[KBS 2FM]]이 나오지 않는 [[경상북도]] [[안동시]] 지역을 찾아가 공개방송을 열었을 정도다. FM인기가요는 2001년 [[KBS 제2라디오]]로 이전했다가,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5년]] [[6월 26일]]에 [[KBS 2FM]] 50주년 특집으로 다시 진행하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후 본격적으로 DJ로 활동하다 보니, 매주 일요일 밤에 있었던 신청곡 차트에는 항상 [[서태지와 아이들]]의 곡이 올라와 있었다. 당시 KBS에서 심의결과 TV방송금지를 먹었던 시대유감을 두 번이나 기습적으로 틀어주기도 했고, [[김준선]]이 주축이 된 View to의 'High High'를 몇 주에 걸쳐 방송해주기도 하는 등 가끔 이주노 본인의 취향에 맞는 노래를 거는 경우가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이주노는 기획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 1996년에는 혼성댄스 그룹 '[[영턱스클럽]]'을 발굴 및 육성하면서 인기가수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성공한다. 비슷한 시기 역시 기획자로 전향한 [[양현석]]의 [[킵식스]]가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빛났던 성공이다. 한편, 이 시기 이주노 소속사에 연습생으로 [[김재덕]]과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이 있었는데, [[DSP미디어|DSP]] 사장 [[이호연(기업인)|이호연]]이 찾아와서 이 둘을 픽업해간다. 이 둘은 후에 [[젝스키스]]로 데뷔하게 된다. 그러나 영턱스의 인기는 앨범이 거듭될수록 떨어져 3집부터 완연한 쇠락세를 걷기 시작하고, 영턱스에서 탈퇴한 [[임성은]]의 솔로 1집 또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1999년에는 본격 힙합에 눈을 돌려 [[허니 패밀리]]를 발굴해내지만 역시 큰 인기를 얻진 못했다. 비슷한 시기 킵식스로 나락을 맛봤던 양현석은 지누션과 원타임의 히트에 힘입어 정상을 향해 치고 오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2000년에는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인 김준선[* 연세대 철학과 3학년 때 1990년 KBS 대학가요축제에서 입상한 후 1992년에 데뷔하여 "아라비안 나이트", "마마보이" 등의 실험적인 곡으로 유명했던 가수. [[방위병]]으로 복무한 후 [[컬트]], 뷰투 등의 밴드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프로듀서 및 음악감독으로 주로 활동하며 간간히 곡을 발표하는 중이다. 김준선은 2016년 9월 4일 복면가왕에 [[가을 전어는 며느리를 남기고]]라는 이름으로 출연해 1라운드 듀엣전에서 뮤지컬곡 대결을 벌였으나,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니]]에게 34:65로 밀려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의 프로듀싱 하에 '무제의 귀환'을 타이틀곡으로 하여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담은 솔로 1집 '6 mill Bionic Juno'를 내놓으며 오랜만에 다시금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이 앨범은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는 평을 받으며 서태지와 아이들 세 멤버 각각의 첫 솔로 앨범 중 제일 실패한 물건이 되어 버렸다. 2001년에는 솔로가수인 김선아[* 배우 김선아와는 동명이인. 원래는 걸그룹으로 데뷔를 하려고 했는데 걸그룹 자체가 엎어지면서 솔로로 데뷔했다. 이 앨범을 끝으로 이주노의 소속사에서도 나갔으며, 가수활동 대신 [[https://news.v.daum.net/v/20071121113711252?s=print_news|뮤지컬로 전향하여 활동하고 있다.]]]를 [[https://www.youtube.com/watch?v=UQH7cDuDTDM|데뷔시켰으나]], 반응은 없었으며 역시 실패로 끝나버렸다.[* 이후 부인 박미리와 같이 나온 방송에서 걸그룹을 준비하고 있다며, 연습실에서 여자 연습생 2명이 공개되었으나, 이후 아무소식이 없는거 봐서는 연습생들도 나간거로 보인다.] 기획자 및 솔로 가수로서의 실패는 결국 기획사가 문을 닫는 결과를 낳아버렸고 한 때 잘 나가는 가수였던 이주노는 연이은 사업 실패와 사기 등을 겪으며 40억의 빚을 떠안은 신용불량자 신세까지 굴러떨어지게 된다. 이에 뮤지컬[* 주로 논버벌 퍼포먼스라 하여 대사없이 동작과 율동만으로 이끌어나가는 뮤지컬을 맡았다.] 제작이나 배우, 그리고 스타 골든벨 고정 게스트 출연 등 이리 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며 2009년 결국 빚을 다 갚긴 갚았다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40억을 다 갚는 것을 보면 그 역시 능력자다. 이후 웨딩홀 및 댄스 아카데미를 경영하며 살림이 안정된 것 같았으나[* 그 이전에 팝핀 현준, 허니패밀리 출신의 MC주라 등과 Asian이란 프로젝트를 기획했으나, 역시 보기 좋게 말아먹었다. 양현석이 자신의 솔로로 흑역사를 생성했어도(그래도 '악마의 연기'는 서태지 빨로 가요프로 10위권 내에는 들었고. 음반을 22만장 팔아 YG 패밀리의 활동 자금을 마련했다.) YG패밀리라는 거대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것을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릴 뿐이다.] 2011년에는 SBS 플러스에서 '90년대 톱가수들의 재기'라는 컨셉으로 방영된 리얼리티쇼 '컴백쇼 톱10'에 고정 출연하기도 했다. 참고로 같이 출연한 이들은 [[조진수]][* 과거 [[ZAM]] 멤버.], [[김성수(쿨)|김성수]], [[R.ef]], [[김정남(터보)|김정남]], [[구피(음악 그룹)|구피]], [[리아(1975)|리아]], [[김현성(가수)|김현성]], [[클레오]] 등 듣기만 해도 절로 아련해지는 이름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