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진수(배우) (문단 편집) == 여담 == * 박정희를 워낙 닮았기에 관련 일화가 꽤 있다. 동숭동 [[대학로(서울)|대학로]]에서 돌아다니거나 술을 마실 때 사람들이 실제 대통령인 줄 알고 깜짝깜짝 놀랐던 것은 이야깃거리도 못된다. 또한 [[택시]]를 탈 때마다 많은 기사분들이 자신의 얼굴을 보더니 '''감히 돈을 받을 수 없다고 돈을 받지 않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과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 박 대통령 역을 맡았던 [[이창환]]도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창환은 이진수 이후 박정희 전문배우로 활동했으며, 첫 박정희 연기가 〈제3공화국〉에서 이진수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것이었다.] * 1993년 6월 26일 방송된 MBC [[예능]]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한 적이 있다. ''93 토토 올스타 가요제전'에서 [[최주봉]], 남능미와 같이 심사위원으로 나왔다.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이 한창 방영 중일 때라 [[선글라스]]를 끼는 등 [[박정희]] 분장을 하고 [[성대모사]]까지 했다. * 실제 [[박정희]]가 그를 직접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별도로 만난 건 아니고 그의 공연을 박정희가 관람한 것이다. 1992년 《[[경향신문]]》 칼럼 〈무대 뒤의 인생〉에서 밝힌 일화에 따르면, [[명동]]에 있던 국립극장의 장충동 이전을 기념하기 위해 박정희가 특명을 내려 제작된 〈성웅 이순신〉이란 연극에 출연했다. 여기서 그는 [[선조(조선)|선조]]에게 전황을 보고하는 장군을 맡았었다. 선조가 "그 쪽 전황은 어떻소?"하고 물으면, 그가 "사망한 자가 300명이 넘고, 부상자 수는 부지기수라 하옵니다."라는 대사로 보고를 마무리하기로 되어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내외는 공연 마지막 날에 직접 와서 관람을 했는데, 너무 긴장했던 그는 "사망한 자가 300명이 넘고, '''죽은 자''' 수는 부지기수라 하옵니다."라고 실수를 했다. 그러자 어느 관객이 가소롭다는 듯 "자식, 되게 웃기고 있네"라며 중얼거렸고 그 소리가 극장 안에서 너무 잘 들려 관객과 연기자들이 폭소하여 연극이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한다. 이 때 '''[[육영수]] 여사는 물론 박정희까지 웃었다고 한다.''' 이 후에도 다른 배우가 실수를 한 번 더 했고[* 무슨 실수냐면, 이순신 장군이 죽고나면 병사들이 북을 치며 무대가 돌아가면서 막을 내리기로 했는데 기계소리만 들릴 뿐 무대 회전이 안 되었다. 쓰러진 연기를 한 이순신 장군 역의 배우 [[장민호(배우)|장민호]]가 그걸 모르고 기계 소리가 멈추자 극이 끝난 줄 알고 일어났던 것.] 그 때문인지 박정희가 [[금일봉]]을 주며 무대에서 배우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은 취소되었다고 한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42500329122007&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2-04-25&officeId=00032&pageNo=22&printNo=14386&publishType=00010|#]] * 〈제4공화국〉과 〈제5공화국〉에서 박정희 역을 맡은 후배 배우 이창환은 〈제2공화국〉에서 [[박병권]]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그래서 박정희 역의 이진수와 이렇게 한 컷에 들어와 두 명의 박정희가 보이는 묘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687253637321.jpg|width=100%]]}}} || || {{{#ffffff '''〈제2공화국〉에 출연한 이진수와 이창환'''}}} || * 1992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출세기〉라는 작품을 할 때의 일화. 공연이 끝난 뒤에 많은 관객들에게 [[사인]]을 해주다가 어느 날 경찰과 어떤 여성이 와서 작은 종이를 꺼내어 본인의 사인이 맞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맞다고 하니 그저께 저녁 8시 쯤 이걸 가지고 [[성남]]의 술집에서 맥주를 먹은 적이 있냐고 묻더란다. 알고보니 그 종이는 [[수표]]였고, 그 무렵 택시 강도 2명이 손님의 수표를 비롯한 돈을 갈취한 뒤 술집에 나타나 맥주 마시고는 이진수의 사인이 담긴 수표를 내놓고 잔금을 챙겨 사라졌다고 한다. 당연히 그는 그 시간에 공연을 하고 있었고, 단순히 관객에게 사인해준 것일 뿐이라 혐의에서 벗어났지만 이젠 배우가 사인도 마음 놓고 못해준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펐다고.[[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53000329122004&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2-05-30&officeId=00032&pageNo=22&printNo=14420&publishType=00010|#]] * 명동 국립극장 시절 있었던 안타까운 일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쥐덫〉을 공연할 때, 마지막 날 밤 공연에서 유독 선배들의 태도가 무성의했다고 한다. 대충대충하면서 무대 밖에서 슬픈 표정으로 자꾸 그를 쳐다봤다고 하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그는 마지막 공연이니 바빠서 못 본 장면들을 봐두려는 것이겠거니 했다고 한다. 연극 끝나고도 출연자들이 가만히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알고보니 개막 30분 전에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는데 공연 중이던 이진수가 소식을 바로 전달받지 못했던 것. 아버지의 사망 소식도 모르고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채 열심히 공연했던 그를 다른 배우들이 측은하게 보았던 것이다. 그는 이 일화를 회고하며 "피에로의 인생은 그래서 더 슬픈 것인지도 모른다."라는 말을 남겼다.[[http://www.moazine.com/viewer/index.asp?s_i=1&a_i=eSNze40Fjop0PC4h60m2jPQ2&type=&rtnurl=%2Fdefault%2FArticle_detail.asp%3Farticleid%3D1014592#page/4|#]] * [[전유성]]이 자신의 저서 《구라 삼국지》에서 밝히기로는, 굉장히 장난기 있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연극배우 시절 천승세의 희곡 [[만선#s-3]]에서 마을 주민들이 단체로 "[[돛]] 달아라!"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에서 이진수는 혼자 '돛'을 '[[좆|ㅈ]]'이라고 외치고는 무대 밑에서 혼자 낄낄거렸다고 한다. 두 단어가 발음도 비슷하고 단체로 크게 "돛 달아라!"라고 외치는 것이니 혼자 돛을 틀리게 외친다고 티가 날 리는 없는 상황. 그런데 하루는 동료 배우들이 이진수를 골탕먹이기 위해 다 같이 [[침묵|대사를 안 하기]]로 짰다고 한다. 아무 것도 모르던 이진수는 이 장면이 오자 우렁차게 평소대로 대사를 외쳤고, ~~"조오x 달아라!!!"~~ 이진수는 국립극장의 전설이 되었다나...[* 성우 [[차명화(성우)|차명화]]도 과거에 "〈만선〉을 라디오 연극으로 녹음할 때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 동료 남자성우가 "돛 달아라!"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혼자 무게를 잡고 다른 대사를 쳐 빈축(?)을 샀다. 슬쩍 장난이 생겨 골탕을 먹이기 위해 출연한 다른 성우들과 짜고 이 부분에서 침묵을 하기로 하고 극을 진행했는데, 해당 장면이 연출되자 아무 것도 모르고 그 남자성우는 점잖은 목소리로 혼자 만선이로구나 읇었고 당연히 좌중은 폭소. 이 동료성우가 바로 [[홍시호]]였다고 한다.] * [[바둑]]을 좋아했다. 국립극단 단원이었던 1960~70년대에 조남철이 운영하던 송원기원에 자주 출입했고, 당시 중학생이었던 조상연(조남철의 조카이자 [[조치훈]]의 형)과 자주 대국했다고 한다. 속기파라서 보통 한 판을 두는데 15분이 걸렸다고 한다.[*A] * [[콩]]과 [[두부]]를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92900329122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1-09-29&officeId=00032&pageNo=22&printNo=14184&publishType=00010|#]] * 후배 교육에도 열성적이었다. 연극적 화법을 정리하여 가르치고 특히 [[서울 토박이]]의 정확한 화법과 [[대한민국 표준어|표준어]]를 지키는 데 노력하였다. * 위에서 언급했듯 신학대학을 다녔으며, 한 때 정말로 신학 쪽으로 가려고 했다고 한다. 내적 갈등 끝에 그만 두기는 했지만, 이런 그의 종교적 성향이 〈비틀거리며 달리는 사람들〉과 1인극 〈빌라도의 고백〉 등 여러 작품에 녹아 들어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진수, version=10, paragraph=2)] [[분류:한국 남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 PD]][[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한국의 드라마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종로구 출신 인물]][[분류:1938년 출생]][[분류:1998년 사망]][[분류:심장마비로 죽은 인물]][[분류:전주 이씨]][[분류:휘문고등학교 출신]][[분류:한신대학교 출신]][[분류:1956년 데뷔]]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