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철 (문단 편집) == 생애 == [[1948년]] [[3월 18일]], [[경상남도]] [[진주시|진주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63회)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하였다. 1969년 [[3선 개헌]] 반대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징집되어 병역을 이행하였다. 이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고문당하고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국제적인 압력으로 석방되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엮여서 다시 투옥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김정례]]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시 선거 구호는 '''돌아온 사형수.'''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12대이철.jpg|width=100%]]}}} || ||<#808080> 이철의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공보물 || 이 때 [[국가안전기획부]]의 방해 공작이 어찌나 심했던지[*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한국당]]과 [[한국국민당]]은 안기부의 공작으로 만들어진 '''관제 야당'''으로, 여당인 [[민주정의당]]에서 공천 탈락한 인사가 민한당이나 국민당으로 와서 출마하는 경우가 있을만큼 사실상 여당의 2중대, 3소대에 불과했다. 그런데 신한민주당이 '''선명 야당'''을 기치로 출범했으니 당연히 방해할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1월 18일 창당한 신한민주당의 기세를 어떻게든 누르기 위해 '''한달도 채 안된 2월 12일로 총선 날짜를 잡는 치졸한 꼼수까지 부렸다.'''] 성북구 일대의 건물주들이 죄다 이철의 선거사무소 임대를 거부했고, 결국에는 자리를 잡기 위해 인근 지역의 쓰러져가는 낡은 건물에 겨우 입주해서 상대적으로 선거 운동을 했다. 게다가 안기부 요원과 전의경들이 쫙 깔려서 감시한 탓에 다양한 시설들의 영업까지 방해받는 지경에 이르자, 다양한 지역의 업주들과 건달들이 선거사무소에 쳐들어와 퇴거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도저히 오갈데가 없었던터라 이철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고, 10여년전부터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투옥에 사형선고까지 받는 등의 온갖 우여곡절을 알게 된 지역의 몇몇 업주들과 건달들이 이철에게 호의적으로 돌아섰다. 이후 이철의 정체(?)를 알게 된 주변 상인들까지 합세하여 선거운동을 도와 결국 당선되었던 것.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찬종]], [[허경구]], [[홍사덕]], [[장기욱]], [[조순형]] 등과 [[김영삼]], [[김대중]] 양김씨의 야권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는 데 앞장섰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노태우]] 정권이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를 밀어붙이려 하자 [[박찬종]] 등과 함께 강력하게 반대하여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을 이끌어냈다. 또한 1988년 말부터 시작된 5공 청문회 때도 [[노무현]], [[이해찬]] 등과 함께 활약하면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KBS의 [[다큐멘터리]]인 [[88/18]] 초반에 [[허화평]] 전 청와대 정무1수석에게 질문하는 인물이 바로 이철. [[https://www.youtube.com/watch?v=cS-MZlwLqYQ|영상]]] [[3당 합당]] 이후 [[이기택]], [[노무현]], [[김정길(1945)|김정길]], [[김상현(1935)|김상현]] 등의 [[통일민주당]] 잔류파에 합류하여 [[민주당(1990년)|꼬마민주당]]을 창당하였다. 1991년 꼬마민주당이 [[평화민주당]]의 후신인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면서 [[민주당(1991년)|민주당]] 소속이 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3선 의원이 되었고, 민주당 원내총무까지 지냈다.[* 이철의 정치적 커리어 중에서 가장 존재감 있는(?) 직책이기도 한 탓에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자세한건 후술.] 1995년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반대하여 민주당의 후신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에 잔류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경기고등학교 선배인 새정치국민회의 [[유재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노무현 등과 함께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활동을 하다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한국당]]과 통합민주당이 합당하면서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으나,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정계를 떠났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 [[정몽준]]의 [[국민통합21]] 창당에 동참하면서 정계에 복귀하여, [[노무현]]과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 관여하였다. 대통령 선거일을 하루 앞둔 2002년 12월 18일, 정몽준이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하자 이에 반발하며 다음날인 12월 19일 국민통합21을 탈당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0130839|당시 기사]]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이철의 탈당기자회견.jpg|width=100%]]}}} || ||<#808080> 이철의 탈당 기자 회견 ||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북구·강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정형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민주당 당적으로 이 지역구에 출마하게 되는 [[전재수]]는 총선 3수 끝에 [[20대 총선]]에서 당선된다. [[21대 총선]]에서도 당선.] 2021년 9월 9일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종걸]] 전 원내대표 등 전직 의원과 지자체장 42인과 함께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http://www.joseilbo.com/news/htmls/2021/09/20210909432782.htm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