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충무공전서 (문단 편집) == 의의 == 흔히 일제 측에서 이순신 관련 유물이나 서적을 탄압하려 했을 것이라 여기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순신/평가]]항목에서 볼수 있듯이, 일제는 다양한 목적 달성을 위해 이순신을 오히려 고평가 하였다. 다만 그 과정 속에서 일제 측에서 왜추(倭酋), 왜적(倭賊)과 같은 비하글들을 검열하고자 하였으나 당시 작성자들의 저항으로 뜻대로 되지 않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77&aid=0003486548|네이버 뉴스 : 이충무공전서, 일제 때 검열 피해 펴낸 진실 밝혀져. 양승률 대전시 문화재종무과 학예연구사, 1795년 간행된 것과 일제 때 나온 전서 대조·교정 분석…“오·탈자 아니라 검열 피하기 위해 삭제된 글자 초서 등으로 숨기는 방법으로 발간”]] 또한 현재 이순신 장군이 직접 친필로 지은 [[난중일기]] 원본 중 1권은 분실되어 있는 상태이다. 난중일기는 1592년의 '임진일기'부터 1598년의 '무술일기'까지 총 8권이어야 하나 이 중에 1595년의 일기인 '을미일기'의 행방이 묘연해 7권만 남아있는 상황.[* 1597년의 정유일기는 정유일기와 속정유일기 2권으로 나뉘어있다.] 하지만 1795년 당시 정조의 명으로 이충무공전서가 간행될 당시에는 난중일기가 단 1권의 분실도 없이 완벽한 상태였고, 이 덕분에 이충무공전서의 난중일기 파트에는 분실된 '을미일기'의 내용 또한 적용되어 있다. 때문에 연구자들은 이충무공전서를 통해 분실된 1권의 내용 또한 유추, 복원하고 있다. 1935년, 조선총독부가 종가에서 난중일기의 초고본을 빌려 난중일기초를 제작했는데 여기에는 을미년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일찌감치 만들어진 이충무공전서가 없었다면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현대에는 영영 알 길이 없을 뻔 했다. [[간찰]] 역시 마찬가지로 현재 대한민국 국보 제76호로 지정된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李舜臣 亂中日記 및 書簡帖 壬辰狀草)'의 서간첩에는 이순신이 조카와 인척인 현건, 현덕승 등에게 보낸 친필 편지 6통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충무공전서에는 9통의 편지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사라진 이순신의 친필 편지 3통의 내용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어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물론 여기에 실린 편지 가운데 하나인 상모숙서(上某叔書)[* 어느 숙부한테 보내는 편지]의 경우 편지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건[* 예를 들어 "서울에서는 호차(胡差)가 성(城)으로 들어왔고, 호장(胡將) 능거리(能巨里)는 1만 군사를 거느리고 사냥하는 일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의주 건너편 구련성(九連城)에 있습니다"며 "도적의 모략을 예측하기 어려워 아주 걱정이 됩니다"라고 썼는데, 이순신이 살아있었을 때 서울에는 호병 즉 청나라(만주족) 병사들이 들어 온 적이 없고, 편지에서 언급된 '능거리'의 경우는 <승정원일기> 인조 9년(1631년) 6월 12일자와 조경남의 <속잡록(續雜錄)> 인조 11년(1633년) 5월 6일 기록에서 언급되는 청나라의 장군이다. 여기서 두 기록 모두 이순신이 전사하고 30년 뒤에 작성되었다.] 등을 볼 때 이순신이 쓴 편지가 아니라 후대에 어떤 이유로 이순신의 편지인 것처럼 잘못 삽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9290910001#csidxc286e04e1ad9644af107743f29f316c|#]] 마지막으로 [[http://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8671|이충무공전서 통제영귀선]]과 [[http://www.yonhapnews.co.kr/photos/1990000000.html?cid=PYH20160426056400013&input=1196m|이충무공전서 전라좌수영귀선]]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거북선]] 그림이며 거북선의 실체를 밝히는 가장 권위있는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