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학수 (문단 편집) == 여담 == * 2008년 1월 29일 당시 [[타워팰리스]] G동 69층 펜트하우스에 거주하고 있었다.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164000/2008/06/021164000200806260716029.html|#]] 지금도 살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 [[삼성그룹]]의 수뇌부인 '구조조정본부'에서[* 전신은 삼성비서실이며, 후신은 삼성미래전략실. 이 조직은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책임을 지고 해체되었으나 현재 삼성전자 사업지원T/F로 사실상 부활하였고 해당 TF를 이끄는 것이 [[이재용]]의 이학수 격인 최측근 [[정현호]] 부회장이다.] 본부장으로 일하면서, 그룹 내의 실질적인 2인자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의 비자금 문제를 폭로했던 [[김용철(1958)|김용철]] 변호사의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 이학수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해당 책에 따르면, 이학수는 건강상의 이유로 날생선을 기피해서 [[회]]를 살짝 익혀서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점쟁이에게 점을 보러 갔다가 "당신은 한 사람에게 운명이 달려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학수는 평소 이 일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듯이 말했다고 한다. 이건희를 받드는 게 자신의 운명이라는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인데, 이는 곧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 또한 자신의 운명이라는 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어쨌든 강남구 대치동 소재 본인 소유 빌딩인 'L&B타워' 건립을 밀어 붙이면서 이건희의 심기를 건드렸고, 이 때문에 이건희가 경영에 복귀한 2010년 이후 그룹 내에서 완전히 밀려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머슴|지시한 대로 움직이고, 시키기 전에 알아서 일처리를 해 오던]] 이학수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조언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삼성그룹 내 관계자 증언이 나왔을 정도였다. [[http://www.sisajournal-e.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373|#]] * 2010년대 후반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 과정에서 검찰에 소환된 이학수가 이명박에게 불리한 증언을 많이 했다고 한다. 삼성그룹의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사건]] 등의 핵심적 증언이 이학수의 입에서 나왔다고. 구조조정본부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이재용]]에 대한 상속 작업이나 그룹 차원의 지저분한 일들을 책임지고 정리하면서 일했던지라, 이학수의 말들 하나하나가 결정적인 증언들이었다고 한다.[* 이미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2010년대 초반부터 '이건희 회장과 본인은 '삼성을 생각한다' 책에 나온 것처럼 그리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소문이 많이 있었다.] * 한편, 이학수 전 부회장의 삼성그룹 퇴진은 당시 삼성 라이온즈 [[김응용]] 사장과 [[선동열]] 감독의 해임을 부르기도 했다. 삼성은 [[2010년 한국시리즈]]가 막을 내린 후, 그해 12월 초 김응용 사장과 [[김재하(기업인)|김재하]] 단장을 퇴진시키는 인사를 단행했고, 30일에는 선동열 감독을 경질했다. 김응용 전 사장, 그리고 김재하 전 단장은 삼성그룹의 2인자로 통하던 이학수 전 부회장과 한 배를 탔던 인사들. 김 전 사장은 이 전 부회장의 부산상고 선배이고, 김 전 단장은 제일모직 근무 시절 이 전 부회장과 함께 한 이력이 있다. 수뇌부가 통째로 교체 되면서, 선동열 감독 역시 칼날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https://m.khan.co.kr/sports/baseball/article/201012302126445#c2b|#]]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