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화룡(야인시대) (문단 편집) === 결말 === 이후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을 거쳐 [[박정희(야인시대)|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이정재를 비롯한 전국의 주먹들이 체포될 때 이화룡과 명동파 인물들만은 체포되지 않아 전화위복이 뭔가를 보여주었다. 4.19 혁명에서 문제될 행동 또한 하지 않았으니 체포할 건덕지 자체가 없었는데다가[* 실제로는 사회 정화를 구실로 옥고를 2번이나 치른 적이 있긴 하지만 군부에 연줄이 있어서 금방 풀려났다.], 그 전까지 충정로 도끼 사건으로 감방에 있었기에 체포 대상 자체가 되지 않았다. [[이정재(야인시대)|이정재]]의 계책 덕분에 목숨을 건진 셈이다. 이정재가 죽자 시라소니와 함께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과 술자리를 하면서 이정재의 최후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한탄한다.[* 건달이라는 위치를 넘어서는 능력범위 밖의 일에 집착하지 말아야한다는 뉘앙스의 견해인데, 이기붕을 만났을때도 이런투로 거절했었다.] 이후 [[최동열]], [[휘발유(야인시대)|휘발유]], [[홍영철(야인시대)|홍영철]], [[시라소니(야인시대)|시라소니]], [[유진산(야인시대)|유진산]]과 함께 마지막화까지 살아남아 김두한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 최후의 6인이 되었다.[* 이때 시라소니와 함께 씁쓸함과 착잡함을 느꼈는데, 결국 자신과 함께 추모했던 정재처럼 두한 역시 정치판의 희생양이 되어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기에 유일하게 건달로 남은 그로선 자신과 함께 서울의 쌍두마차였던 시절이 빛바래진 것에 허탈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실존 인물도 죽기전 자신이 정치깡패까지 했을 정도로 주먹세계에 몸담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며 후회했단 점을 보면 김두한의 죽음을 계기로 스스로를 상당히 돌아본 것으로 보인다.] 실존 인물 역시 드라마 결말 시점으로부터 12년 후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적절한 고증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