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회창 (문단 편집) === 1997년 대선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 조기석방 및 사면요구 === [[1997년]] 대선 전, 이회창은 자신이 직접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단 입장을 밝히면서 문민정부 집권 기간동안 TK홀대론으로 흔들리던 TK 민심을 잡으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당내 주류파였던 김영삼계 PK를 견제하고 TK 중심의 민정계와 이회창 본인의 충청, 수도권을 중심으로 당내 권력을 안정적으로 장악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15대 대선은 모든 후보가 전노의 사면을 내밀 수밖에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일어나버렸다. 결론적으로는 대국민 화합의 차원에서 당선인 신분의 김대중이 현직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에게 요청하는 형식으로 사면이 이뤄졌다. 낙선한 이회창후보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 셈이다. 김대중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독재자들을 사면하지 않았다는 책임은 덜고 동시에 화해와 용서라는 이미지를 취한 것이었고, 김영삼은 후임 대통령의 부담은 덜어주는 동시에 TK홀대론을 달래주는 형식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전노사면은 원론적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상황이었고, 그 상황에서 [[9월 1일]], 신한국당 이회창 전 대표가 먼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추석전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조기석방을 요구하여 언론에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비화되었던 것이다.[[https://imnews.imbc.com/replay/1997/nwdesk/article/1768481_30717.html|신한국당 이회창 대표 추석전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조기석방 요구]]] 당시 이회창이 [[전두환]]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감옥에 있는 전두환이 이회창에게 "고맙다"며 "우리 때문에 정치적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냐"고 화답할 만큼 매우 기뻐했던 것으로 밝혀졌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329104010&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32&pageNo=4&printNo=16224&publishType=00010|옥중 전 씨 사면 건의 이회창 대표에 고맙다, 구두 메시지]] 그에 대해 이회창 후보도 전두환의 화답에 "고생 많으시다. [[추석]] 때 나오시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아쉽다"고 전두환 측에게 화답한 것으로 밝혀졌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209105004&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20&pageNo=5&printNo=23659&publishType=00010|李(이) 대표-全(전) 씨 비밀메시지 오갔다 사면파동 후 변호사 통해 동아일보 1997.9.24]] 당시 [[한겨레]]에서는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추석 전 전두환 [[노태우]] 두 분의 석방을 바랐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아쉽게 됐다"고 전두환 측근들에게 화답하였다고 보도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289126004&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28&pageNo=26&printNo=2991&publishType=00010|사면 노력해줘 고맙다” 전 씨, 이회창 대표에 인사말 1997.9.24 한겨레]] [[파일:Screenshot_20210829-150458_Samsung Internet.jpg]] 당시 이회창 후보는 추석 전 [[전두환]] 사면건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01100289104005&editNo=7&printCount=1&publishDate=1997-10-11&officeId=00028&pageNo=4&printNo=3006&publishType=00010|국민공감대 측면엔 소홀 시인 1997.10.11 한겨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