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예왕후 (문단 편집) == 생애 == 인예왕후는 당대의 명신이자 [[문종(고려)|문종]]의 총애를 받는 신하였던 [[이자연(고려)|이자연]]의 장녀로 태어났다. 문종은 이자연의 장녀와 혼인하고 [[연덕궁]]을 하사해 인예왕후는 연덕궁의 주인되어 연덕궁주(延德宮主)가 된다. [[문종(고려)|문종]]의 후궁인 [[인경현비]](仁敬賢妃), 인절현비(仁節賢妃)와 자매지간이다. 문종 재위 6년인 1052년 2월 2일 왕비(王妃)로 책봉되고 '연덕궁비(延德宮妃)'로 불리게 된다. 이후 1053년 11월 24일 그녀의 [[순종(고려)|맏아들]]이 왕태자로 책립(冊立)된다. 문종 사후 연덕궁비는 [[태후]]의 위치에 오르고 자수전(慈壽殿)을 새로운 관저로 가지게 되었으나, 장남 [[순종(고려)|순종]]의 이른 죽음으로 정식으로 태후로 책봉되지 못했다. 이후 차남 [[선종(고려)|선종]]이 [[순종(고려)|순종]]의 뒤를 이어 등극하게 된다. 선종 재위 3년인 1086년 2월 왕태후(王太后)로 책봉되자 각 지역에서 하례(賀禮)하는 표문(表文)을 올렸다. 모든 주현(州縣)[* 주(州)와 현(縣)]에서 하례품으로 보낸 옷감이 10만필이였고, 탐라(耽羅)[* 현재 [[제주시]]]에서는 직접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선종 재위 9년인 1092년 8월 17일 왕태후는 차남인 [[선종(고려)|선종]] 함께 [[서경(고려)|서경]]으로 행차한다. 여러 지역을 둘러보던 중 9월 2일 서경에서 갑자기 훙(薨)하니, 개경으로 모셔와 대릉(戴陵)에 장사지낸다. 아들 선종은 인예순덕태후(仁睿順德太后)란 시호를 올리고 태후가 지은 국청사(國淸寺)에 인예왕후의 [[신주#죽은 사람의 이름, 관직 등을 적은 나무 조각|신주]]를 모시는 반혼전(返魂殿)을 짓고, [[어진]]를 봉안하는 진전(眞殿)도 설치한다. 이후 [[인종(고려)|인종]]이 성선(聖善)을, [[고종(고려)|고종]]이 효목(孝穆)의 시호를 덧붙였다. 인예왕후는 생전 은(銀)글씨로 불경을 베끼길 원했고, 이는 삼남 [[숙종(고려)|숙종]]이 완성시켜 인혜왕후가 세운 국청사에 안치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