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사사 (문단 편집) == [[아스카 시대]]/[[나라 시대]] == [[야마토]] 정권이 등장하면서 일본의 서부는 점차 고대 왕국의 형태를 갖춘다.[* 당시까지만 해도 규슈 서남부와 도호쿠 지역에는 각각 [[하야토]], [[에미시]]라 불리는 야마토에 동화되지 않은 인적 집단이 거주했으며 하야토는 8세기, 에미시는 11세기에 가서야 일본 정권에 편입되었다.] 7세기에 야마토 정권은 [[백제]]를 돕기 위해 4만 7천의 군사를 파병하였으나 [[백강 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게 대패하였다. 그 후 [[당나라]]와 [[신라]]가 [[고구려]]까지 멸망시키자 [[일본]]으로 쳐들어올 가능성을 대비하여 [[규슈]] 지방에 방어 요새를 설치하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Gundan_Infantary.jpg]] 이 시기의 병졸 무장. 더 자세한 내용은 [[일본갑옷]] 문서 참조. 신라와 당의 침략을 막기 위한 군은 [[군단]](軍團)이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율령]]에 근거한 고대 왕국의 군대였다. 성인 남성 3명 중 1명을 군인으로 징발했다. 그러나 상비군은 실제로는 적었다. 실제 작전을 할 때는 원정군을 편성했는데 병사 만 명(1군)에 장군을 뒀으며 3만명(3군)이 되면 대장군을 두었다. 이 때 오히려 [[발해]]와 손잡고 신라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일본의 신라 침공 계획]] 참조. 8세기 말까지 신라나 당이 쳐들어오지 않자 군단제는 점차 퇴색한다. [[에미시]]와 전쟁을 벌일 때 원정군을 편성하고 임시직으로 [[막부]]랑 [[정이대장군]]을 두기도 했으며 상설 지휘부로 진수부를 설치하고 진수부장군이 지휘 통술케 했으나 상비군은 점차 쇠퇴한다. 그러나 [[규슈]]는 예외적인데 나당의 방비가 필요했고 특히 [[신라구]]가 8세기에서 9세기 경에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다.[* [[왜구]]와는 달리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는 존재이지만 일본 서부에선 이들 때문에 [[징병제]]가 일부 유지되었다.] 천황의 조정은 모노노베씨(物部氏) 등에게 군사를 위임하면서도 황사(皇師) 군대를 직접 통솔하는 걸 그만두지는 않았다. 중국 왕조의 제도를 도입한 징병된 보병 군대는 [[간토]]와 [[도호쿠]] 지역을 복속시키고 군사를 담당하는 씨족들은 이 지역에 봉해져 근거지를 이뤘다. 자기들의 신사를 세우고 군신을 모셨는데 상술한 모노노베씨, 나카토미씨(中臣氏, 훗날의 [[후지와라]]씨), 오오씨(多氏) 등이 간토 개척에 앞장 선 씨족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