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외교 (문단 편집) === [[일본 제국]] === 19세기 중엽 [[일본]]의 [[에도 막부]]는 [[쿠로후네 사건]]을 계기로 급격한 개화압력에 맞닥뜨리게 되나, 당사국인 [[미국]]이 [[남북전쟁]]을 치르는 사이 자국의 역량을 총결집하여 [[메이지 유신|근대화를 이룩하고]], [[대정봉환]]·[[판적봉환]]을 거쳐 중앙집권적인 [[일본 제국]]을 형성하는 데 성공한다. 1870년대에는 [[이와쿠라 사절단]]울 파견해 유럽 문명들을 직접 보고 겪었는데 이때의 충격은 일본의 근대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신생 일본 제국의 당면 외교과제는 단기적으로는 '''서구 열강의 침탈에 맞설 자구책을 확보'''하며 장기적으로는 '''서구 열강들 사이에서 일본의 이해를 관철시킬 방책을 강구'''하는 것이었다. 이에 답하고자 [[아시아주의]]부터 [[정한론]]과 [[탈아입구]], [[이시와라 간지|세계최종전쟁론]]까지 온갖 사상이 난립하였으나, 일제는 주변국들을 침탈하여 스스로 [[제국주의]] 열강에 올라서겠다는, 어찌 보면 가장 쉽지만 가장 위험한 노선을 택하였다. 그 결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일제는 [[류큐 왕국]]을 [[오키나와현]]으로 완전히 편입했고, [[청일전쟁]] 승리로 [[대만]]을 [[시모노세키 조약|합병]]했으며, [[러일전쟁]]으로 체결된 [[포츠머스 조약]]에서 [[조선]]-[[대한제국]]을 [[을사조약|보호국화한]] 데 이어 [[경술국치|5년 뒤에는]] [[조선 총독부|식민지화]]했다. 뒤이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도 일본 제국은 승전국의 편에 서서 패전국의 일부 극동 식민지를 확보하였고, 이를 즈음하여 형식적으로나마 내부적인 제도 정비 역시 끝마치면서 국제적으로도 제국주의 열강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럴싸한 겉보기와는 달리 대다수의 일제 신민들은[* 심지어 [[일본인]] 하층민들조차도 그러했으니 [[조선인]], [[중국인]] 등 식민지의 사정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중화민국]] 지역의 중국인들에 비하면야 [[내지]]의 일본인들이 나은 편이긴 했지만, 당대 중국은 내전 때문에 정말로 민생을 돌볼 여력이 없었던 반면 일본은 제국주의에 눈이 멀어 내부 모순을 방치한 것에 가깝다.] 여전히 착취와 빈곤에 시달렸으며, 국부(國富)나 과학·군사기술, 국민들의 근대화 수준 역시 서구 열강에 비하면 처참한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급격한 근대화와 팽창의 결과 내부에서는 자치·독립을 요구하는 식민지의 [[민족주의]] 운동 및 평등·혁명을 요구하는 [[공산주의]] 운동이 동시에 터져나왔고, [[1930년대]] 이후 일본 제국은 이를 [[군국주의]]로 억누르며 [[만주]], [[중국]], [[동남아시아]], [[태평양]]으로 연이어 무리한 팽창을 꾀하다가 끝내 [[미국]]의 [[리틀 보이|원자]][[팻 맨|폭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두 발에 패망하면서 대부분의 영토를 토해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