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인 (문단 편집) == [[한국]]과의 관계 == [include(틀:관련 문서, top1=한일관계)] 일단 국제적으로 [[이웃나라]] 국민끼리 사이가 좋은 경우가 적기도 하지만, 여러 의미에서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정말 잘 맞는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의 [[일본]] 내지는 일본인에 대한 악감정은 [[일제강점기]] 또는 그 직후의 국가적 혼돈을 느껴본 노년층과 바로 그 아랫 세대인 중장년층일수록 강하다. 반면 [[10대]] 학생들과 [[20대]]~[[30대]] 정도의 젊은 세대들은 [[일본 문화 개방|대일 문화 개방]]과 여행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일본색을 낯설지 않게 여겼던데다, 한국의 국력 성장에 따른 열등감 희석의 영향도 있어 상당히 완화되어 있다. 오히려 [[일뽕|일본에 대해 지나친 사대주의를 보여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다만 국제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본인을 사업 파트너로서는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일본 특유의 [[다테마에]] 문화 때문에 솔직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있어 사적으로까지 친밀한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대한민국|한국]]에서의 일본 문화 개방이나 일본에서의 [[한류]] 붐으로 인해 문화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일 국제커플들도 많아지기 시작했고, 특히 일본 여성과 결혼하는 한국 남성들의 수가 [[1995년]]경엔 2842건에 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https://ja.wikipedia.org/wiki/%E5%9C%A8%E6%97%A5%E9%9F%93%E5%9B%BD%E3%83%BB%E6%9C%9D%E9%AE%AE%E4%BA%BA#/media/File:Marriage_of_Koreans_in_Japan_ja.png |위키백과 일본어판에 일본의 한국인과 결혼통계를 참고하자.]][[https://ja.wikipedia.org/wiki/%E5%9C%A8%E6%97%A5%E9%9F%93%E5%9B%BD%E3%83%BB%E6%9C%9D%E9%AE%AE%E4%BA%BA#/media/File:Marriage_of_Koreans_in_Japan_ja.png| 일본인 여성과 남성의 한국인과의 연도별 혼인건수 비율이다]] [[https://translate.googleusercontent.com/translate_c?depth=1&hl=ko&prev=search&rurl=translate.google.co.kr&sl=ja&sp=nmt4&u=http://kensaku.mhlw.go.jp/search%3Fq%3Dcache:vBM0FbbZrrQJ:www.mhlw.go.jp/toukei/youran/data27k/1-37.xls%2B%258A%25D8%258D%2591%2581%2540%258D%25A5%2588%25F7%26client%3Dmhlw_frontend_J%26proxystylesheet%3Dmhlw_frontend_J%26output%3Dxml_no_dtd%26ie%3DShift_JIS%26site%3Dmhlw_collection%26access%3Dp%26oe%3DUTF-8&usg=ALkJrhhJXfE9xvO9z0QiFUiUW8MPMaRu7A|일본의 국적별 혼인통계이다.]]] 다만 일본이나 한국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갖고 살고 있기 때문에 국제결혼으로 국민감정을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일본 문화를 즐기면서도 수시로 일본인 또는 일본 연예인에 대한 [[우익]] 논란을 제기하기도 한다.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해서 제기된 경우([[일본 제국]]의 제국주의적 정책 및 [[일본군]]의 전범행위에 대한 옹호발언 등)도 있지만, [[한국인]] 입장에서 단지 불쾌해서 제기되는 경우([[하시마 섬]]에서의 영화 제작발표회, 우익 논란이 있는 원작자와 관련 작품에 출연한 배우,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질의 시 묵묵부답 또는 답변 회피 등)도 있다. 또한 전후 맥락이 잘린 채 한국인을 자극할 만한 부분만 강조되어 의혹 제기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A에게는 우익이라고 주장하다가 B에게는 침묵하는 이중잣대인 경우도 제법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유명 연예인 중에는 한국에서 우익 논란이 한 번이라도 제기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 [[우익 미디어물]] 논란도 수시로 벌어진다. (주로 [[넷 우익]]의 경우) 한국인 또는 한국계에 대해서 일본인에 비해 허풍이 심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거나 툭하면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다|사죄 보상]] 타령하며 시비를 붙인다는 편견이 존재한다.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해 반감을 크게 갖게 된 것은,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사죄발언이 결정타였다. 이때 친한 성향의 일본인들이 상당수 등을 돌리기도 했다. 또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불협화음도 상당한 타격을 줬다고 한다. 그 이후엔 한일 양국 모두 서로에 대한 배척을 대놓고 드러내는 한국의 [[문재인]] 정부,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가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갈등 양상이 훨씬 심해져 버리게 된다. 그 결과, 2019년 [[한일 무역 분쟁]]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낳기도 했다. 다만 [[2020년대]]에 들어 [[신냉전]] 시대에 접어들며 [[중국]]의 [[패권주의]]식 외교가 심해지고 [[북중러관계|북중러]] 3국이 밀착하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한국과 일본 양국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게 되었고, 한국인과 일본인의 상호 호감도 역시 높아져 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일단 한국의 경우, [[2023년]] [[2월]]에 전경련이 한국의 20대~30대 626명(20대 331명·30대 29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일관계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42.3%가 일본에 대한 인상을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부정적이라는 답변은 17.4%로, 긍정 답변이 부정보다 2.4배 높았다. 보통이라는 답변은 40.3%였다. 또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과거(45.6%)보다 미래(54.4%)라고 보는 청년들이 많았다. 또한 일본 역시 2023년 10월 12일에 나온 자료에서 "한국이 좋다"며 한국에 호감을 보이는 일본인이 11년 만에 37%로 최고 수준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3863878?sid=104|#]] 일본인들 중에는 한국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한국의 대일무역적자가 상당한데다[* 사실 이것은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 정부에서 일본 기업에 대해 한국 진출에 대한 편의를 상당히 많이 봐주었던 것이 큰 이유 중 하나다.], 소위 '일본 중소기업이 거래 끊으면 삼성은 망한다'라는 말과 같이 자신들보다는 한수 낮은 이류 국가로 보는 시각이 강했으나, 한국이 국제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2010년대 중반부터는 애써 그렇게 보고싶어하는 [[정신승리]]적인 양상이 강해지는 추세다. 나이 든 사람들은 [[재일교포]]에 대한 고정관념도 큰데다 자기들이 잘나가고 한국은 군사정권 하의 빈국일 때의 철 지난 감각이 아직도 있기 때문에 한국을 무시하는 편이나, 젊을 수록 한국에 대해서 보다 대등하면서도 긍정적인 인식이 많은 편이다. 양국 간 문화 교류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로 [[한류]]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원래는 중년 여성을 중심으로 붐이 시작됐는데 2010년대 들어서 젊은 층으로 급속하게 퍼졌고 이 영향으로 일본 청소년들의 한국,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매우 높아졌다. 일본의 장년, 노년층 중에는 일본과 한국의 근대사를 비슷하게 보며 동질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이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살펴보면 상당히 일리있는 관점이다. 일단 [[일제강점기]]라고 해서 일본인이 다 잘 살았던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대다수의 일본인들 역시 당시 체제하에서 심하게 고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중산층이 자리잡은건 1960~70년대 고도성장기에 출현한 것이지, 패전 이전까지 일본 국민 대다수은 최저임금도 안되는 빈곤층이었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문화권에도 적용되는데 과거 [[18세기]]~[[19세기]] 유럽권과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의 미국만 보더라도 당장 산업화가 시작되던 시기의 대다수의 국민들은 노동자로서 심하게 착취당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당장 [[군국주의]] 시절의 일본은 한국의 [[대한민국 제5공화국|군사정권]] 같은 힘든 시기였다. [[카미카제]]같은 당시 일본 제국의 미친 짓만 봐도 그 시절의 일본 군부는 정상이 아니었다. 무기를 만들기 위해 젓가락이나 부엌칼을 포함해 철이란 철은 죄다 수탈해가고 자국의 식량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남자들은 군인, 노동자로 징용당해 끌려가 가정이 무너지곤했다는 묘사가 의외로 자주 등장한다. 그런 군부가 권력을 쥐고 있었으니 서민들 삶이야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일제시기 시절 지배민족이었던 일본인이 식민지인보다 우대를 받았던 것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다. 일본인이 열악한 상황에 처한 군인이나 노동자 정도였다면 한국이나 중화권 식민지 출신들은 그냥 '노예'였다고 보면 편하다.] 또한 각자 전쟁을 겪은 이후 비슷한 시기에 [[GHQ]]로 대표되는 외세의 영향권[* GHQ는 연합군 최고 사령부를 뜻하며 딱히 미국만이 아니라 [[중일전쟁]]으로 지분이 있는 [[중화민국/국민정부|중화민국]]과 관동군과 싸운 소련 등 여러 국가로 구성된 연합체였다. 원래는 연합국 각국이 독일처럼 일본을 분할 점령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미국은 중화민국에게 [[류큐 제도]]를 넘기려고 했으나, [[장제스]]가 사양했다.[[http://www.dailian.co.kr/news/view/244801|#]] 결국 미국의 지분이 제일 크고 영향력이 강했으니 미국의 이미지가 강한 것일 뿐이다.] 아래에 있었으며 시기는 비록 달랐지만 중노년층들이 젊은 시절 산업화를 이끌어 황폐화된 인프라를 재구축하고 자국의 고도성장을 지켜봐온 부분에서도 비슷한 동질감을 느끼는 듯 하다. [[일본 제국]] 당시의 비참했던 대다수 일본 서민들의 삶을 덧대어 설명하자면 정치는 명목상 [[민주주의]] 체제였지만,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다리 따위는 장식입니다|장식일 뿐,]] 치안유지법 때문에 사실상 귀족 중심의 독재와 지역연고 코드인사로 굴러가며 실질적으로는 전근대적 봉건체제나 다름없었다.[* 주요 요직들은 구 사쓰마, 조슈 번 출신들이 독점했다.] 그리고 1930년대 후반부터는 [[2.26 사건]] 이후 [[도조 히데키]] 등이 장악하는 군부 독재 체제로 바뀌면서 더욱 [[막장]]으로 흘러갔다. 이 와중에 전쟁을 일으켜 [[식민지]]를 수탈한 돈은 모조리 군부와 재벌 호주머니속으로만 들어가다 보니 서민들은 지속적으로 빈곤한 삶을 살았다. 특히 서민들은 [[만주]], [[몽골]], [[중화민국/국민정부|중국]], [[한국]] 등지의 개척단에 반강제로[* 지역마다 인원을 할당해서 할당된 인원을 채우지 못할 경우 세금 감면을 안해주거나 자치단체 보조금을 깎았다.] 끌려나갔고[* 이 때 떡밥으로 내건 것이 세금 감면, 농토 지원(물론 식민지로 만든 조선이나 대만의 농민들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군 면제였다. 하지만 패색이 짙어진 1943년 이후에는 농토 지원 없이 개척단이고 뭐고 얄짤없이 다 강제 징집해갔다.], [[태평양 전쟁]]에서는 결국 패망하게 된다. 일본 서민들, 특히 여자들은 내선일체를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한국인과 원치않는 강제 정략결혼을 한 경우도 흔하다. 그러다 패망하고 식민지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국적이 반강제로 박탈당하며 돌아가지 못한 사람이 많다. 현재도 생존자가 국내에 남아 있다. 그나마 한국은 국교 정상화가 빨라서 60년대, 중국은 국교 정상화가 된 80년대에야 이산가족 상봉을 할 수 있었지만, 북한에 있는 잔류 일본인들은 생사조차 불분명해졌다. [[도쿄 대공습|미군의 폭격]][[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으로 본토는 폐허가 되었으며]], 1945년 이후에는 [[GHQ]] 군정 하에서 1958년 전쟁 전 경제수준 회복선언을 할 때까지 반[[식민지]] 상태를 13년 정도 경험한다. 미국이 일본을 농업 국가로 만드려다가 [[한국전쟁]] 덕분에 계획을 취소했다.[* 사실 [[냉전]] 당시 제 1세계 대부분의 공통점이 [[미국]]으로 인해서 부활한 것이다. [[유럽]]은 [[마셜 플랜]]으로 [[일본]]은 [[6.25 전쟁]]으로 [[한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공교롭게도 이 모두 다 [[공산주의]]란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즉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위해 재건되었다는 공통점.] [[일제강점기]] 당시였던 1910년 이후부터는 [[식민지]] 및 속령지역이었던 [[한반도]]에 일부 일본인들이 이주를 해오며 살았던 적도 있었고 넓게는 [[중국]] 대륙까지 이주하여 '왜인촌(倭人村)' 이라는 집단촌까지 형성했다는 일설도 있었다.[* 일부는 일본 패망 후 잔류하여 [[일본계 중국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한반도의 지배계층으로 군경(軍警)까지 주둔했지만 [[1945년]] [[8월 15일]] 한반도가 해방이 되면서 거의 대부분이 본국으로 쫓겨났고 보복도 꽤 있었다고 전해진다. 일부 일본인들은 조선에 남아있을려고 했는데 결국에는 죄다 일본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어떤 일본인 가족은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있는 것을 보고 한국인들이 [[식량]]을 나눠줘서 고마웠다고 수기에 쓰기도 하였였다. 그러나 일부 일본으로 돌아가던 일본인은 높은 비율로 일본인이라는 신분을 속이고 [[밤(시간)|밤]]에 움직이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했다고 한다. 당시 돌아가지 못한 일부 일본인은 아예 한국인으로 [[귀화]]하였던 적이 있었으며 한국인들의 눈치 때문에 아예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인]] 행세를 했던 경우도 있었다.([[망절]]씨 항목 참고) 이 역시도 케바케로 일본인 처 모임이 각 지역별로 있음. 이 할머니들은 일본국적을 유지한 채로 계속 한국에 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