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나일본부설 (문단 편집) == [[반도 일본어설]]과의 관계 == 임나일본부설에서 연상될 법한, 혹은 임나일본부설이 연상될 법한 다른 학설로 [[반도 일본어설]]이 있다. 이는 러시아계 미국인 언어학자 [[알렉산더 보빈]]이 본격적으로 제시해 한국어와 일본어의 연구와 관련해 큰 주목을 끈 학설로, 언어학적 지식과 역사적 지식이 얕은 사람들은 임나일본부설과 연관지어 곧잘 잘못 이해하기 쉽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보빈의 반도 일본어설에 따르면 한반도 중남부에는(지역 오지를 포함해 늦게 잡으면 기원후 5~6세기 무렵까지, 대체로는 그보다 이른 시기까지) [[일본어족]]의 고대 언어를 쓰던 부족들이 살았는데, 이 학설에서 비정하는 반도 일본어의 대략적인 범위가 공교롭게도 [[가야]]의 영역은 물론이고 [[백제]]와 [[신라]]의 영역과도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즉, 언어적으로만 따지면 '''일본계'''라고 할 수 있는 집단이 지냈다는 것이다. 이는 얼핏 보기에 임나일본부설과 엮기에 충분해서 한국인들에게는 불쾌감을[* '일본인들의 조상이 한반도 남부에 살았다'라는 게 되어 임나일본부설 및 [[이덕일]]의 역사 왜곡이 연상되기에 충분하다.], 일본인들에게는 사람에 따라 불쾌감[* 일본 우파는 현대 일본인의 조상이 되는 도래인의 대부분이 한반도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이나 솔깃한 소식으로 다가올 수 있는데[* 당연히 임나일본부설 등 일본인의 한반도 남부 지배 및 경영설을 뒷받침할 수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정작 제대로 보빈의 논지를 살펴보면 '''임나일본부설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대표적으로 참조할 만한 논문으로는 '[[https://www.academia.edu/6360018/From_Koguryo_to_Tamna|고구려에서 탐라까지(2013)]]'([[https://homaranisto.tistory.com/29|번역]]), '[[https://homaranisto.tistory.com/30?category=772561|고구려어와 백제어: 다른 언어였는가, 고대 한국어의 방언이었는가?(2005)(번역)]]', '[[https://www.oeaw.ac.at/fileadmin/Institute/IKGA/PDF/events/Vovin_2012_overlords.pdf|이주민인가, 지배자인가?(2012)]]([[https://homaranisto.tistory.com/38?category=772561|번역]]) 등이 있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보빈의 반도 일본어설 및 그에 바탕을 둔 학설 및 주장들은 모두 임나일본부설에서 주장하는 바와는 그 성격이 다르며,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다. 앞서 예로 든 논문 중 2005년의 것에서는 '[[섬]]', '[[매(조류)|구지]]', '[[산|무레]]' 등의 옛 한반도 삼국의 어휘들 상당수가 서부 고대 일본어로 차용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2013년의 논문에서는 그간 주장해 온 반도 일본어설을 전체적으로 종합한다는 느낌으로 '''고대 한국어족 사용자들이 한반도 중남부의 일본어족 사용자들을 일본 열도로 밀어내거나 한국어족으로 동화시켰다'''는 골자를 분명히 했다. 2012년의 논문에서는 아예 한국인들이 봐도 급진적으로 보일 법한 주장으로 '''일본 황실'''이었던 [[오진 덴노]]와 그 어머니로 기록된 [[진구 황후]]마저 고대 한국어를 쓰던 [[한국계 일본인]]이었다고 주장했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두 인물은 [[삼한정벌]] 등과 관련해 일본 우파들에 의해 허구한 날 임나일본부를 비롯해 일본의 한반도 남부 정복 및 지배•경영설의 핵심 인물로 거론된다는 것이다. 반도 일본어설은 보빈의 방대하고도 실증적인 연구 방법으로 인해 그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한국어와 일본어의 계통적 관계에 큰 진전을 준 학설로, 정치적 입맛에 따라 쥐락펴락되는 여타 한일 양국의 분쟁 사안에 대한 주장과는 궤를 달리한다. 보빈의 주장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일본에서 한반도로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그 반대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영향을 미친 게 합당한 흐름이며, 이는 고대 일본이 어떤 형태로든 고대 한반도의 영향을 '받는' 쪽에 있었다는 기존 사학계의 이해와도 궤를 같이한다. 이쯤에서 '임나일본부'가 정확히 무엇인지 다시 보자. 임나일본부란 '야마토 '''정권''''에서 한반도 남부의 특정 지역에 설치한 '통치 기구'를 가리킨다. 즉, 이는 일본 열도의 고대 일본 정부에서 직접 한반도 남부에 설치한 일종의 지방 정권 내지는 식민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반도 일본어설에서는 이 같은 흐름을 전혀 읽을 수 없고, 오히려 한국계 통치자가 일본 황실까지 장악했을 가능성마저 열어 두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시기의 [[일본사]]가 [[한국사]]가 되지는 않는다. 대다수 [[한국인]]들의 역사관이 [[민족주의]] 사관을 바탕으로 하기에 빠지기 쉬운 함정인데, 이런 논리로 치면 [[중국인]]인 [[위만]]이 [[고조선]]의 왕위를 찬탈하여 세운 정권인 [[위만조선]]을 [[중국사]]라고 할 수도 있는 대단히 무리한 전개다. [[알렉산더 보빈]]의 주장은 이렇게 [[일본 황실]]을 장악하고 [[천황|덴노]]로 즉위한 [[한국]]계 지배층이 피지배층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본인]]들에게 언어적, 문화적으로 서서히 동화되어갔다는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외국계 인물이 타국의 군주로 즉위하는 일은 대단히 흔했고, 외국계 지배층 쪽이 피지배층에 동화된 경우도 [[청나라]]의 사례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통치한 [[합스부르크 왕가]]나 [[스페인|현대 스페인 왕국]]의 왕실 가문인 [[부르봉 왕가]]의 사례까지 매우 흔했다.] 한반도 남부에 반도 일본어 화자, 즉 일본어족 집단이 살았던 시기는 지방 구석구석까지 포함해서 늦게 잡아 봐야 6세기 언저리까지이고, 대부분은 그보다 몇백 년 앞서서 거의 삼한시대 및 초기 삼국시대 중으로 일본 열도로 이주하거나 부여계 한국어족 집단에 동화되어 현실적인 의미에서의 '한국인'이 되었다. 반도 일본어 집단이 한반도 남부에서 활발히 생활하던 시기는 원삼국시대 이전으로, 임나일본부설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이 시기에는 '일본인'이라는 개념마저 소급 적용하기 힘들다. 결론적으로 임나일본부설과 반도 일본어설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얼핏 연관되어 보일 수는 있으나 실제로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고대 한일 양국 언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삼국시대에 문화적으로 우위에 있던 쪽은 한국계였음을 역으로 뒷받침하는, 일본 우익 측 주장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증거만을 내놓는다. 양직공도의 '혹속한 혹속왜(或屬韓或屬倭)' 역시 '한때는 한(韓)에 속했으며, 한때는 왜(倭)에 속했다'라기보다는 ''''어떤 이'''는 한(韓)인이며, '''어떤 이'''는 왜(倭)인이다'로 보는 게 더 적절할 수 있다. '혹자(或者)' 등의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혹(或)'에는 '어떤'이라는 부정칭의 의미도 있는데, 반도 일본어설과 연계하면 여기서 말하는 '왜인인 어떤 이들'은 백제, 신라, 가야 등 한반도 남부에 잔류하던 일부 토착민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