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나일본부설 (문단 편집) === 일본이라는 국호가 등장한 시기상의 오류와 신빙성 === 또한 임나일본부에서 나온 '''[[일본]](日本)'''이라는 단어는 7세기 이후에나 쓰였다. 5세기 [[장수왕]]이 만든《호태왕비(好太王碑)》에도 '일본'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으며 '왜' 혹은 왜구로 표기했다. 본래 일본의 국호는 왜(倭)였고, 국호를 일본(日本)으로 정한 것은 아무리 빨라도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비정하는 시대보다 한참 후대인 7세기 [[덴무 덴노]](673~686) 때로 본다. 실제 일본이란 국호가 일본의 공식 국호로 정식 사용된 시기 또한 서기 701년 다이호 율령 때이다. 다이카 개신 이후 국명을 일본으로 칭한 것에 대해 다시 견신라사, 견당사가 그에 대해 해명하고 다닌 것을 보면, 발음문제를 떠나 사서 상으로[* 일본 측 공식기록만이 아니라 한중의 기록을 포함하여] '일본'이란 공인된 국호는 임나일본부설이 나오는 시기와 연관 짓기란 어렵다. 또한 기록 자체가 일본 국호를 사용한 뒤인 후대에 정리되면서 과장된 쪽으로 윤색되었을 가능성은 뚜렷이 제시할 수 있다. 일본부란 단어는 《[[일본서기]]》에 나타난다. 또한 일본을 귀국[* 貴国]이라고 표현하고 신라나 백제의 사신이 자신의 나라를 칭할때는 신국[* 臣國]이라고 칭하는 등, 천황의 신격화가 본격화된 시점의 명칭을 사용하는 등 걸러들어야 할 것이 많다. 일본어 위키백과 사전의 해설은 이렇다. > また、『神功紀』・『応神紀』の注釈に引用された『百済記』には、「新羅、貴国に奉らず。貴国、沙至比跪(さちひこ)を遣して討たしむ」など日本(倭国)を「貴国」と呼称する記述がある[76]。山尾幸久は、これまでの日本史学ではこの「貴国」を二人称的称呼(あなたのおくに)と解釈してきたが、日本書紀本文では第三者相互の会話でも日本のことを「貴国」と呼んでいるため、貴国とは、「可畏(かしこき)天皇」「聖(ひじり)の王」が君臨する「貴(とうとき)国」「神(かみの)国」という意味で、「現神」が統治する「神国」という意識は、百済三書の原文にもある「日本」「天皇」号の出現と同期しており、それは天武の時代で、この神国意識は、6世紀後半はもちろん、「推古朝」にも存在しなかったとしている] > > 또 『신공기』•『응신기』의 주석에 인용된『백제기』에는 "신라, 귀국에 모시지 않겠다.귀국, 사지히코(沙至比跪)를 써서 쳐부수다' 등 일본(왜국)을 '귀국'이라고 호칭하는 기술이 있다[76].야마오 유키히사(山尾幸久)는, 지금까지의 일본사학에서는 이 「귀국」을 2인칭적 칭호(귀국)로 해석해 왔지만, 일본서기 본문에서는 제3자 상호의 회화에서도 일본을 「귀국」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에, 귀국이란, 「가외 천황」 「성(聖)의 왕」이 군림하는 「귀국」 「신(神)나라」 「신(神)나라 후반에도 「천황」이라고 하는 의식은, 백제 3서의 원문에도 있는 「일본」 「천황」의 출현으로 같은 시기에 존재 되어 있으며 (같은 시기에 사용하고 있는), 그것은 천무천황의 시대로(시대에 비로소 생겨난 개념이라는 뜻) 이 천조(천손의식, 신국인식)의식은 6세기 후반은 물론 추고천황 집권기에도 성립(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이다. 일본서기에서 4~6세기 이전의 기록들은 일본서기가 아니라 백제서기라고 불릴 만큼 백제와 한반도 및 관련 기사가 일본 국내의 기록보다 방대한 양을 차지하는 이유가, 위에 서술된 문자가 도입된 시기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일본은 당대에 문자가 없으니, 원래 일본 국내의 절대적인 기록도 부족한데 여기에 [[이주갑인상]]이라는 조작을 통해 연대를 뻥튀기 했으니, 그 빈자리에는 백제 삼서의 기록이 차지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일본서기의 이주갑인상이 된 기사는 죄다 한반도 관련 기사이고, 특히 백제와 관련된 기사임을 알수 있다. 이주갑인상이 생겨난 이유도 일본서기에서 전하는 백제가 고구려에게 멸망 했다는 5세기 중반에 망명간 백제의 지배층들이, 왜국에서 정착하고, 사서의 편찬이라는 국가사업에 관여되어서 자신들의 조상이 백제 신하로 이룩한 업적을 소급해서 마치 일본이 이룩한 일로 곡해했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져온 사서와 단편적인 문헌을 일본의 문헌이나 자료들과 비교하자니, 백제보다 훨씬 짧은 왕조 역사와 비루한 기록을 의식했기 때문에 이주갑인상이라는 조작을 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당연히 가뜩이나 일본은 당대에 남겨진 문헌은 압도적으로 적은데 120년을 뻥튀기 했으니, 그 공백은 백제삼서를 인용해 때우는 식 밖에 없다. 실제로 이주갑인상이 발생한 4-6세기의 기록에서는 일본 국내 기록은 매우 적고 죄다 백제삼서의 기록을 인용하며 그 내용은 죄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기록이다. 이에대해 일본측 사학자인 이노우에(井上秀雄) 교수는 “임나일본부의 명칭은 ‘일본서기’에 있어서 신라 백제계의 사료에만 있고 일본 측의 사료에는 일본부의 명칭이 없다. 이와 같은 불확실한 사료를 기초로 임나일본부의 조직을 추측할 수 없다. 임나일본부는 본래 임나에 토착한 일본인의 정치연합이요 일본정부와 관계없다”고 주장했다.[* (井上秀雄, 朝鮮史入門92面).] 또한, 일본은 한자를 수용하기 이전에는 문자가 없었다. 한자를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5-6세기라고 본다. 수서(隋書)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沒水捕魚 無文字 唯刻木結繩 敬佛法 於百濟求得佛經 始有文字 >물속에 들어가 고기를 잡는다. 글자는 없고 나무에 균열을 만들거나 새끼줄을 묶어 기록할 뿐이다. 불교를 숭상하여 백제에게 불경을 구하니 비로소 글자가 생겼다. 고로, 일본서기에 문자가 생기기 이전의 일들 즉 5-6세기 이전의 기록은 구전에 의존한 것이으로, 사전적 정의로 역사라고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각색되고 살이 붙어 과장 내지는 없던 사실을 신화마냥 부풀려서 전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일본어 위키백과의 일본서기 항목의 서술도 수서의 기사를 인용하며 5-6세기 이전의 문자는 없으며 단지 口承(구전)에 의존한 기록이라고 한다.[* 『日本書紀』は日本の現存最古の「正史」とされるが、その編纂までには日本における文字の使用と歴史的記録の登場の長い歴史があった。日本(倭)における歴史、即ち過去の出来事の記憶についての記録としてまず言及されるのは「帝紀」(大王家/天皇家の系譜を中心とした記録)と「旧辞」(それ以外に伝わる昔の物語)である. これらは津田左右吉が継体・欽明朝(6世紀半ば)の頃に成立したと提唱して以来、様々な議論を経つつも、元々は口承で伝えられていた伝承が6世紀にまとめられたものと一般的には考えられている] 문자가 생긴 시점은 놀랍게도, 일본서기에서 대략적으로 사료로써 신뢰할수 있다고 판단하는 5-6세기의 일이다. 이에 한술 더 떠서, 일본어 위키백과는 원래 기억과 구전으로 전해진 것들을 6세기에 집대성해서 8세기에 이르러 편찬했다고 설명한다. >『日本書紀』は日本の現存最古の「正史」とされるが、その編纂までには日本における文字の使用と歴史的記録の登場の長い歴史があった。日本(倭)における歴史、即ち過去の出来事の記憶についての記録としてまず言及されるのは「帝紀」(大王家/天皇家の系譜を中心とした記録)と「旧辞」(それ以外に伝わる昔の物語)である[12]。これらは津田左右吉が継体・欽明朝(6世紀半ば)の頃に成立したと提唱して以来、様々な議論を経つつも、元々は口承で伝えられていた伝承が6世紀にまとめられたものと一般的には考えられている[13][14][15]。さらに、文字に残された系譜情報を「史書」として見るならば、雄略朝(倭王武、ワカタケル大王、5世紀後半)にはその種のものが存在していたことが稲荷山鉄剣銘の存在によってわかる[16]。 분명히 일본이라는 국호는 7세기에 말엽에나 생겼는데 BC 408년의 일본서기 기록을 보면 황태자 이름이 日本足彦國押人尊이다. [[데꿀멍]]... >六十八年 春正月丁亥朔庚子,立日本足彦國押人尊,爲皇太子。年廿。天足彦國押人命,此和珥臣等始祖也。 >68년 봄 정월 정해삭 경자(14일)에 일본족언국압인존을 황태자로 하였다. 나이 20세였다. 천족언국압인명은 화이신(和珥臣;와니노오미) 등의 시조다. 이것을 보면 일본서기는 문자가 생기기 이전의 5-6세기의 이전의 일은 후대에 창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후대에 윤색과 날조를 덧붙인 기사의 시대와 황태자의 이름을 보면 무엇을 위해 이런 거짓말을 했는지는 명백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