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동원 (문단 편집) == 기타 == * [[파일:external/dimg.donga.com/201209180500006_2.jpg]] 후임 노무현 정부에서도 대북 포용정책이 유지되면서, 이후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는 [[이종석(정치인)|이종석]]이 그의 포지션을 물려받게 되었다. 임동원은 1990년대에 막 박사학위를 받은 이종석이 [[세종연구소]]에 취직하도록 주선하여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북한 연구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이종석을 수행원에 포함시킨 바 있다. * [[파일:external/www.koreanherald.com.au/_copy8.jpg]] 주요 저서로는 회고록 <피스메이커>가 있다. 이 책은 영어, 일본어판으로도 번역, 출간되었다. * 2020년 [[국립외교원]]이 2층의 외빈 접견용 공간을 그의 이름을 딴 '임동원 외빈 접견실'로 명명했다. 현재의 국립외교원 청사(서울 서초구 소재. 양재역 인근에 위치)가 1990년대 초 임동원의 원장 재직 시절(당시에는 외교안보연구원)에 건립되었고, 김대중 정부 시절 통일부장관과 안기부장 등으로 재직하며 햇볕정책을 진두지휘하는 등의 공적을 기념하는 취지다.[* 한편으로는 당시 [[문재인 정부|민주당계 정부]]가 집권 중이었기에, 자기 정파의 원로에 해당하는 인물을 기리는 의도도 담겼다.] 이는 국립외교원에서 '[[반기문]] 강의실'(2017년 명명)에 이어서 특정 인물의 이름을 딴 공간이 마련된 두번째 사례다. * [[청죽회]] 회원이다. [[전두환]]의 측근 중 하나인 [[허화평]]에게 [[하나회]]를 탈퇴하고 [[청죽회]]로 들어오라고 권유했지만, 그것이 [[전두환]]에게 들통나는 바람에 [[소장(계급)|소장]]으로 강제 예편 당했다. 또한 [[전두환]]은 임동원을 [[나이지리아]] 주재 한국 대사로 임영하는, 사실상의 [[유배]]를 보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