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그레브 (문단 편집) == 기타 == 유명한 관광지로는 반 옐라치치 광장과 자그레브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성 스테판 성당을 비롯한 여러 성당들, 자그레브 국립극장과 자그레브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트칼치체바 거리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상당수 작품들이 위작 의심을 받고 있긴 하지만 [[미마라 미술관]]도 대표적 관광지로 뽑힌다. 여름에 현지인들은 관광중심부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 야룬 호수를 주로 찾는다. 유명한 피아니스트 [[백건우]]-[[윤정희(1944)|윤정희]] 부부가 1977년 자그레브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 북송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가, 가까스로 [[미국]] 영사관으로 도피해 북송을 모면한 사건이 있었다. 밴드 [[스틸하트]]의 [[밀젠코 마티예비치]]와 함께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유명 [[인터넷 방송]]인 [[가브리엘(인터넷 방송인)|가브리엘 흐라스토비치]] 또한 이 동네 출신이다. 격투기 팬들의 로망 [[미르코 크로캅|미르코 필리포비치]]도 자그레브 주민. 수도임에도 관광객 수는 [[풀라(도시)|풀라]], [[로비니]]가 있는 [[이스트리아 반도]]나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 [[자다르]] 등이 있는 [[달마티아]] 지역에 비해 떨어진다. 이는 해안 지역이 [[아드리아해]]의 풍광과 함께 길게는 [[로마 제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중세 도시를 보존하고 있는 데 비해 (특히, 두브로브니크의 경우 워낙 잘 알려진 관광지이기도 하고)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가 오랫동안 [[헝가리 왕국]]과의 [[동군연합]]을 거쳐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아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 과거 똑같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았으나 엄연한 수도였던 [[체코]]의 [[프라하]]나 [[헝가리]]의 [[부더페슈트]],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와 달리 [[크로아티아 왕국]]은 [[대타협]] 이전까지는 헝가리와의 동군연합 하에 있는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 제국]]의 구성원이었고 [[크로아티아인]] 귀족들도 크로아티아에서 활동하기보다는 헝가리나 [[빈(오스트리아)|빈]]에서 활동하는 것을 선호하다보니, 19세기 이전까지는 분명 크로아티아 왕국의 수도는 맞긴 한데 [[오스만 제국]]과 [[국경]]이 가까운 그저 그런 변방 도시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탈퇴한 크로아티아가 세르비아와 손잡고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속하면서 주도권을 세르비아한테 내주다보니 [[베오그라드]]가 발전하는 동안 자그레브의 발전은 정체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프라하가 발전할 때 브라티슬라바가 상대적으로 정체된 것과 유사하다.] 반 옐라치치 광장에서 아래쪽으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근대도 아니고 아예 소비에트 분위기가 풍기는 대도시가 되어 버린다. 크로아티아에서도 관광지보다는 정치적인 역할만 담당하는 곳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https://www.yna.co.kr/view/AKR20200322042551009|2020년 3월 22일 이곳에서 M5.3의 지진이 발생,]] 1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부상당하는 인명피해와 26,197동의 건물에 피해가 발생했다. 자그레브에서는 1880년에도 M6.2의 대지진이 발생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던 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