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유선진당 (문단 편집) === 결론 === 이렇게 지역 중심으로 모인 정당인 자유선진당은 한국의 정치체제가 진보-보수로 모일 때 특별한 개성도 없이 흩어진 경우에 가깝다. 제 3당 지위까지 올라갔던 자민련이 '원조 보수'론과 내각제를 지향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신한국당]]의 개혁 행보[* 아이러니 하게도 그 개혁행보를 펼치던 신한국당의 중심에는 이회창이 있었다.]와 이에 따른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충분한 입지 확보로, 내각제 개헌시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변한 정치환경에서 이회창이 선택할 수 있었던 스탠스는 '(원칙은 세우는) 보수 야당'이었다. 이것은 여당 내 소수파였던 [[친박]]계와 정확히 겹쳤다. 더구나 200석에 가까운 압도적인 여당의 의석 수 앞에서, 캐스팅보트의 지위는 애시당초 상실했으며, 그렇다고 자유선진당이 [[민주당(2008년)|민주당]]과 강력하게 결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또한 이회창 총재가 [[제17대 대통령 선거|17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내세웠던 지방 세력의 확보를 위한 '강소국 [[연방제]] 개헌(연방제 통일안이 아님)' 역시 같은 최후를 맞았는데, 여당 [[친이]]계의 개헌 계획이 다음 대선의 후보로 이미 확고했던 [[친박]]계의 반발과 함께 무산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회창 총재의 의원 장악력도 '제왕적 총재'라는 비판과는 별개로 상당히 떨어졌다. 결국 여러모로 자유선진당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