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유선진당 (문단 편집) ===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의 참패 === [[충청북도]]에서 도지사 후보 공천을 하지 못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충청도]]의 자존심'을 슬로건으로 [[2010년 지방선거]]를 치른다. 그리고 결과는 참패. [[서울특별시]], [[충청남도]], [[대전광역시]] 세 곳에 광역단체장 후보를 냈지만, 대전의 [[염홍철]] 후보만이 유일하게 [[당선]]되었고[* 이 곳은 염홍철 전 시장과 [[박성효]] 현 시장의 리벤지 매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에 염홍철 시장([[열린우리당]]) 휘하에 있던 박성효 정무부시장이 [[한나라당]]으로 들어가 지선에 나오면서 사이가 험악해졌다. 그 상황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피습과 "대전은요" 발언을 통해서 박성효가 이겼다.][* 다만 박성효가 [[대전광역시장]]을 4년간 하면서 각종 사업들을 [[호구(유행어)|호구]] 마냥 털려서 [[평판#s-1|평판]]이 상당히 나빴던 것 덕분에 염홍철의 복귀가 먹힌 점도 있다. 이 시절의 행보 때문에 박성효는 대전시장에 출마하는 족족 낙선하고 있다.] 충남은 당 원내대표를 지낸 [[박상돈]] 후보가 [[민주당(2008년)|민주당]]의 풍운아 [[안희정]] 후보에게 역전패당하면서[* 이후 박상돈은 체급을 낮춰 천안시장 선거에 도전했고 첫 선거에서는 낙선했지만 두 번째 도전에서 당선되었다.] 대전 자민련 인증을 확실히 했다. 그나마 [[염홍철]] 후보[*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전시장에 당선되었으나, 2004년에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했고, 2006년에 열린우리당 디버프를 제대로 받아서 [[낙선]]하고, 2008년에 권선택, 이상민 등과 비스무리한 시기에 자유선진당 입당.]가, 민선 3대 전직 시장으로서 제4회 지선에서 '아깝게' 패배할 정도로, 나름 기반이 있었기에 망정이었다. 서울에서 히든카드로 출마한 [[지상욱]] 후보[* 배우 [[심은하]]의 남편. 대표적인 이회창 라인으로 뽑힌다. 이후 합당 과정에서 새누리당에 합류하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중구·성동구 을]]에 공천을 받아서 당선되지만, 이회창 전 총재가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길 때에 동행한다.]는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보다 득표율이 낮았다.[* 이후 [[지상욱]]은 정치적 행보를 보이지 않다가,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중구·성동구 을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원내에 입성했다. 이후 [[바른정당]]에 입당하고 현재는 [[바른미래당]], [[새로운보수당]]을 거쳐 [[국민의힘]] 소속이다.] 앞서 말했듯이 [[충청북도지사]]는 후보도 하나 못 내는 꼴을 겪었다. 거기에 충남에서도 기초단체장 절반을 다른 정당들에 내주기까지 했다.(선진 7, 한나라 4, 민주 3)[* 심대평의 국민중심연합이 [[공주시]] 1곳에서 승리한 게 전부였다.] 그래도 충북에서는 3곳의 지역(보은군수·옥천군수·영동군수)을 확보했으나, 이것은 이용희 의원의 남부 3군 세력권이었으므로 의미가 크지 않다.[* 이 지역들의 별명이 '''이용희 나라'''라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이용희 의원과 같은 당이면 사실상 누구나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당선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이용희 전 의원이 정계를 은퇴한데다가 이용희 의원 아들을 상대로 연거푸 승리를 거둔 [[박덕흠]]이 내리 3선을 해버린 지금 시점에서는 옛날 이야기지만...] 이런 참패 속에 [[이회창]]이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에서 물러나는 듯 했지만 1주일 만에 도로 복귀했고, [[박상돈]] 전 원내대표의 도지사 출마로 치뤄진 [[2010년 재보궐선거#s-2|2010년 7월]]의 [[천안시 을]] 보궐선거에서는 14%의 지지율로 3위에 그치는 등(선거는 [[한나라당]]이 승리)[* 이 때 당선자는 [[빙그레]] [[회장]] [[김호연]]. 18대 총선 당시에는 패했지만, 이번에는 승리했다.] 같은 선거에서 역시 참패한 [[은평구]]의 [[창조한국당]]과[* [[은평구 을]] 지역구 의원이 [[문국현]]인데, 문국현의 의원직 상실로 치뤄진 보궐선거에서 은평구 을에서 내리 3선을 했던 '''한나라당 후보'''이자 친이계 실세인 [[이재오]] 특임장관이 당선되었다.] 함께 공멸할 징조를 보인다. 한편 당의 생명을 걸었던 세종시 문제는 결국 한나라당 [[친박]]의 힘으로 수정안이 부결되었으나, 이것은 '''친박계의 승리'''였지 선진당의 승리가 아니었다. 이후 존재감을 잃고 당 내에서 다선의원이었던[* 당시 3선. 물론 7선의 조순형과 5선의 이용희라는 두 거물이 있었지만 민주당계 출신이던 이 둘은 나서지 않았고 이들 다음으로 선수가 높았던 변웅전 의원이 대표로 추대되었다.] [[변웅전]]을 대표로 추대했지만 소리 없이 묻혔고 [[2011년]] [[9월 8일]], 지방선거 당시 탈당했으나 공주에서만 승리를 거둔 심대평의 [[국민중심연합]]과 다시 신설합당을 하고, 이름도 '자유선진당' 그대로 가기로 결의했다. 덤으로 무소속인 이인제 의원도 같이 입당하여 어느 정도 세를 불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