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유선진당 (문단 편집) === 19대 총선에서의 참패 === || [youtube(iQBn5H0Lh3Y)] || || 총선 광고 || || [youtube(1_PrAZ7N_d4)] || || [[심대평]], [[이인제]], [[변웅전]]이 요리사로 출연한 총선 광고 || 그런 좋지 않은 상황에서 맞이하게 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안 그래도 어려운 상황에서 [[심대평]]과 [[이회창]]이 내분까지 일으키는 최악의 상황에서 선거를 치렀다. 이회창 전 총재는 4선 출마가 아닌 불출마를 선언했고[* 다만 이회창이 당 내에서 팔순을 바라보는 고령이었다고는 해도 중간에 공기업 사장을 하느라 지역구를 비운 [[홍문표]]에 비해 인지도나 인기가 더 강력했기 때문에 출마했어도 승리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이에 반발해 탈당하라는 발언까지 나오는 등 사실상 심대평의 독자 세력 선거였고 여기에 6선에 도전하던 [[이인제]]가 거드는 형국이었다. 여기에 [[이상민(1958)|이상민]], [[이용희(1931)|이용희]], [[권선택]] 등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다시 선진당에서 나가고 야권 대통합이라는 가치를 내세운 민주당으로 되돌아가버려서 사실상의 사망 선고를 받았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서 이회창 지지를 선언한 자민련 의원들이 줄줄이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을 생각하면 비슷하다.][* 이 때 [[김창수(1955)|김창수]]도 복당을 시도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혼자만 복당이 거부되었다. 당시 대덕구 당협위원장이던 박영순과 사이가 나빴던 것이 원인으로 추정.] 이런 상황에서 자유선진당은 50석 이상을 얻겠다는 허황된 꿈에만 빠져 있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3874633|#]] 한 마디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얻었던 의석을 재현하겠다는 뜻인데,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소리인지는 뻔할 뻔자. 과거 자민련이 50석이 되는데 일조했던 [[대구광역시]]는 이미 철저한 새누리당 지지세로 돌아섰고[* 당시에 [[TK]]를 상징하는 인물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인 박근혜였으니 말 다했다.],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은 택도 없고, 그나마 비벼볼 언덕인 충청권도 제대로 잡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의 공천 신청자는 겨우 32명이었다. 따라서 50명 당선은 전혀 불가능했다. 그 결과 [[세종특별자치시]]에서는 원래 [[연기군]] 출신 의원이던 심대평 대표가 [[민주통합당]]이 내세운 전국구 거물 [[이해찬]] 前 총리에게 큰 차로 밀려 '''떨어졌고''', 달랑 '''5석''' 밖에 건지지 못했다. 17대 총선 당시 [[자민련]]의 4석보다 1석 많기는 한데, 그때 자민련은 비례대표 3% 득표에 실패, 즉 4석이 다 [[지역구]]였다. 반면 2012년 자유선진당은 지역구는 3석으로 줄었고,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간신히 3.2%를 차지해서 2석을 추가했다. ※ 당선 의원 * 지역구: [[이인제]] - [[논산시·계룡시·금산군]], [[성완종]] - [[서산시·태안군]], [[이명수]] - [[아산시]] * 비례대표: [[문정림]], --[[김영주(1954)|김영주]]--[*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 → [[황인자]] (승계) 충북에서는 역시나 [[이용희(1931)|이용희]] 의원이 [[민주통합당]]으로 가버리면서 힘을 못 쓰고 전멸했고[* 다만 이용희 의원의 아들인 민주당 [[이재한(기업인)|이재한]]은 [[낙선]]했는데, 당시에는 지역구 '''세습'''에 따른 비판이 더 컸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정치신인 [[박덕흠]]이 당선됐다. 또한 [[옥천군]]이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모친인 [[육영수]] 여사의 고향인지라 [[새누리당]]이 표를 좀 더 얻은 것도 있다. 이 구도는 지금도 굳어져서 20대 총선에서도 또 이재한 후보가 박덕흠 의원에게 패했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에서는 아예 공천조차도 받지 못했다. 박덕흠이 3선 중진이 된 것은 덤.], 정당 득표율에서는 '''[[통합진보당]]에도 밀리는'''[* 물론 진보세력과 [[참여계]]가 통합하면서 지지율이 쏠린 것과 선진당의 민주당 출신 의원들과 [[이회창계]]가 이탈한 것을 감안해야 한다.][* 심지어 통합진보당이 충북에서 지지율이 높았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꼴만 자꾸자꾸 겪었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에게 썰린 [[자유민주연합]]을 생각하면 쉽다.] 4년 전 5석이나 쓸어담은 [[대전광역시]]는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에게 '''모조리 뺏겼으며''', 당의 존립 기반이라는 충남에서도 [[천안시|천안]]과 공주 등 도시권은 민주당에, 농촌권은 새누리당에 다 뺏기고 말았다.[* 훗날 명색이 텃밭이라는 호남에서 민주당에 완전히 썰려버린 [[민생당]]과 유사하다. 두 당 모두 지난 총선 때 돌풍을 일으켰다가 내부 계파 갈등이 일어나 지방선거에서 완패한 후 다음 총선 때 더욱 크게 참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