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경왕후 (문단 편집) == 기타 == * '대윤(大尹)'과 '소윤(小尹)'을 나눌 때 대윤의 우두머리가 되는 [[윤임]]이 장경왕후의 친오빠이다. 이 때문에 [[을사사화]] 당시 [[윤임]]을 비롯한 장경왕후의 친정 [[가족]]들은 문정왕후와 소윤 세력에게 정치적으로 몰려 대거 [[숙청]]당했다. 그나마 장경왕후의 친아버지 윤여필은 나이가 많아서 잠시 [[용인시|용인]]에 유배를 갔다가 [[문정왕후]]가 '윤여필은 장경왕후의 지친(아버지)이므로 특별히 방면한다'라고 말하며 풀어주었다. * 어째 죽고 난 뒤에도 편치 못했다. 첫번째는 본인이 죽고도 20년이 지난 [[1537년]](중종 32년)에 벌어졌는데 [[김안로]] 세력은 장경왕후 사후에 능을 조성했을 때 돌이 나왔다며 국모를 매장하는데 좋지 못한 자리를 썼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천장(이장)이 결정되었는데 몇달 뒤 [[김안로]]가 몰락해서 실제로 옮겨지진 못한 듯, 두번째는 [[명종(조선)|명종]] 시기인데 [[중종(조선)|중종]]이 죽은 후 중종은 장경왕후 곁에 묻혔는데 [[문정왕후]]가 어째선지 [[중종(조선)|중종]]의 능을 멋대로 옮겨버렸다. * 남편인 [[중종(조선)|중종]]과 공통 조상을 3명이나 같이 둔 먼 친척지간인데 [[정희왕후]]의 아버지 윤번을 공통 조상으로 보면 서로 8촌지간[* 중종과 장경왕후 모두 윤번의 현손들이다. [[중종(조선)|중종]]은 윤번의 막내딸 [[정희왕후]]의 증손이고 장경왕후는 윤번의 차남 윤사윤의 증손이다.]이고 [[조선]] 3대 왕 [[태종(조선)|태종]]을 공통 조상으로 보면 10촌지간[* 중종과 장경왕후 모두 [[태종(조선)|태종]]의 5대손들이다. [[중종(조선)|중종]]은 태종의 3남 [[세종(조선)|세종]]의 현손이고 장경왕후는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현손이다.],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을 공통 조상으로 보면 9촌지간[* 중종은 심온의 5대손이고 장경왕후는 심온의 현손이다. [[중종(조선)|중종]]은 [[심온]]의 장녀 [[소헌왕후]]의 현손이고 장경왕후는 [[심온]]의 막내딸 심씨 부인의 증손이다.]이다. 그리고 [[성종(조선)|시아버지]]가 [[월산대군|이모부]]의 남동생이기도 하다. * 조선의 왕비들중 오래 생존했다면 단경왕후 못지않게 불행한 삷을 살았을 가능성이 큰데 아들인 인종은 명군의 자질을 타고났지만 재위9개월만에 승하했으며 오빠인 윤임은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친정이 풍비박산이 났으며 조카들인 윤흥신,윤흥제 형제는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1592년 벌어진 임진왜란 다대포진성 전투에서 윤흥신,윤흥제 형제가 전사하는등 아들,오빠,조카들이 모두 죽고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