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기영(1916) (문단 편집) == 기타 == * [[종교]]는 [[불교]]를 믿었다. 소설가 [[김동리]]의 회고담에서 등장한다. [[http://www.paeksang.or.kr/psjang/psjang3View.asp?PageCode=paeksang&ci=97|#]] * 당시로서는 무명이던 [[황석영]]을 발굴하여 대하소설 장길산을 한국일보에 연재하게 하고 엄청나게 밀어줬다. [[황석영]]의 회고에 따르면 자신이 1974년에 처음 장길산을 연재할 당시 자료 조사비로 장기영이 거금을 덥석 내줬는데 어쩌다 보니 소문 듣고 몰려든 배고픈 주변 문인들 술 사주고 밥 사주고 하느라 돈을 그만 보름만에 다 써버렸다. 다시 장기영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니 "이번에는 자료비로 꼭 써라. 안 그러면 다음은 없다"면서 처음보다는 적게 자료비를 내주고 자주 가는 술집 명함에 장기영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주면서 "앞으로는 술이 마시고 싶으면 여기서 내 이름 앞으로 달아놓고 마셔라. 단 자료비로는 술 마시지 마라"라고 했다고 한다.[* 출처: [[http://www.paeksang.or.kr/psjang/psjang3View.asp?PageCode=paeksang&ci=8|백상재단 홈페이지]]] * [[일간스포츠]]에서 주최하는 국내유일의 종합예술상인 '[[백상예술대상]]', 재단법인 백상재단, 서울경제 백상경제연구원은 그의 호에서 유래했다. * [[김훈(소설가)]] 을 등용한 것도 이 사람. 당시 한국일보는 주요 신문들 중 유일하게 기자 공채에 [[고졸]] 출신도 응모할 수 있었는데, 당시 [[김훈(소설가)]]은 아버지 김광주의 사망 후 가계가 어려워지면서 [[고려대학교]]를 중퇴해 고졸 신분이었다. 아무리 응모가 가능하더라도 당대 엘리트 중의 엘리트인 기자를 뽑는데 고졸 출신을 뽑는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장기영은 면접까지 올라온 김훈을 보고 "눈에 불량끼가 있어 기자를 잘하겠다"며 뽑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