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도영 (문단 편집) === 초년 === 1923년 1월 23일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났다. 신의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토요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했다. [[일본군]] [[학병]]으로 [[장준하]]와 함께 [[중국]] 쉬저우에 주둔했던 쓰카다 부대에서 복무하였다. 장준하의 일본군 [[탈영]]과 [[독립운동]] 여정을 담은 [[수필]] '돌베개'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책에는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모 [[장군]]'이라고 칭하고 실명을 밝히지는 않는다. 당시 일본군 병사였던 모 장군은 일본인 고참병들이 남긴 음식을 혼자 먹기 위해 더러운 손을 밥그릇에 넣어 뒤돌아 혼자 먹는 추태를 보인다. [[조선인]] 탈주병이 생겨 부대 내에서 조선인들에 대한 눈초리가 사나워지고 생활이 고달퍼지자 조선인들이 모여있는 내무반 안에서 조선인 동료들을 향해 칼을 뽑아들고는 "이제 또 누가 도망치겠느냐? 이제 도망가는 놈은 내가 찔러죽일테다!"라고 호통치는 등 모습이 부끄럽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반면에 장도영의 [[자서전]] '망향'에서는 조선인 탈주병들이 여럿 나왔으며, 이후 같은 부대의 장준하가 탈영했는데 그가 탈영병 1호였고 당시 성공하기를 기원했다며 담담하게 나온다. 게다가 오늘날 우리가 장도영하면 가장 떠올리는 [[군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의외로 유년 시절에는 군대 체질과는 맞지 않았다고 한다. 신의주고보 재학시절 [[스파르타]]식 교육과 맞지 않았던 탓에 학교생활에도 적응을 잘 하지 못하고 심지어 말까지 더듬었다고 자서전 ‘망향’에 나온다. 게다가 일본군에 징집될 때도 처음에는 반항을 해보았으나 형사들이 워낙 강압적으로 나온 탓에 억지로 응했는데 [[관부연락선]] 안에서 취조받을 때 직접 얻어맞기까지 했다고. '망향'에서 이 부분이 앞뒤가 안 맞아 읽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돌베개'에서 나오는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하자면 쉬저우 쪽에서 조선인 6~7명의 탈주병(훗날 고려대총장 [[김준엽]] 등)이 발생했고 이에 여러 부대에 있던 조선인들을 몽땅 한번도 탈주병이 없었던 '쓰카다 부대'로 몰아 넣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계속 탈출하여 무려 24명이나 성공했다. 장준하는 훈련을 받으며 주변 지리를 익힌 후 비교적 늦은 시기인 1944년 7월 7일에 동료 학병 3명과 함께 탈출했다. 같은 부대에서 한번에 4명씩 탈출했으면 보통 큰 사건이 아니었을 텐데 사실관계를 모호하게 기술한 것은 그가 조선 동포들의 사정에 관심 없었거나, 당시 '딴 사람 다 탈출했는데 너만 뭐했냐?'라는 소리 들을까봐 그런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