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미란 (문단 편집) === 2004년 ===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75㎏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사실 당시 장미란이 마지막 시기 도전을 성공한 직후까지만 해도 거의 금메달이 확정적인 분위기였는데, [[중국]]의 탕궁훙이 금메달에 도전하기 위해 다소 무리하게 무게를 올려서 도전했고,[* 172.5에서 182.5로 10kg을 건너뛰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 당시에는 무리수였다.] 용상에서 위태롭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겨우겨우 버텨냈고, 그것이 성공으로 인정되면서 장미란이 분패하게 된 것이다. 다만 어느 나라이든 금메달의 가치는 은메달/동메달보다 훨씬 크고, 또 동메달의 가치도 4위 이하보다 훨씬 큰 법이기 때문에 조금 무리하더라도 높은 기록에 도전한 것 자체는 있을 수 있는 일이나, 문제가 된 것은 실패로 판정 받아도 무방했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수준으로 성공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 이 사건은 기계체조 남자 개인종합에서 일어난 양태영 오심사건[* [[양태영]]이 평행봉 경기에서 스타트점수 10점짜리 경기를 하고도 9.9점으로 0.1점을 손해봐 미국의 폴 햄에게 금메달을 내주고 동메달에 머문 올림픽 기계체조 사상 최악의 오심사건이다. 이 경기에서 폴 햄은 도마에서 착지하다가 심판석까지 굴러 떨어지는 엄청난 실수를 했는데도 9점대라는 아주 후한 점수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체조에서 10점 만점제가 폐지되었다.]에 묻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이 점은 사실상 실패라고 봐도 될 정도로 논란이 많았다. 당시 세계역도연맹(IWF) 총재였던 타마스 이얀이 경기 직후 해당 심판진을 비난하면서 "진정한 금메달은 장미란"이라고 언급했지만, 결국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어쨌든 이 당시 은메달을 수상한 성적을 바탕으로 장미란은 2005년 [[고려대학교]]에 체육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