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송 (문단 편집) == [[삼국지(정사)|정사]] == 익부기구잡기에 따르면 형 [[장숙#s-1]]은 위엄이 있고 엄숙하며 용모가 매우 훌륭했지만, 동생 장송은 사람됨이 짧고 작으며 방탕하고 절개와 지조를 익히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식견이 높고 사물의 이치에 밝아 총명하고 과단성이 있어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조조]]가 형주를 장악하고 중원에서의 영향력이 강화되자, [[유장(삼국지)|유장]]은 [[조조]]가 [[장로(삼국지)|장로]]를 이용하여 서촉을 침공할까봐 두려워했다. 이에 여러 차례 사절을 파견하여 조조에게 복종의 의사를 밝히고 꼬박꼬박 각종 예물을 바쳤는데, 그러던 중 파견된 사절이 장송이었다. 문제는 장송이 파견된 때가 하필 [[적벽대전]]을 앞둔 시기였고, [[손권]]을 관광태울 생각에 푹 빠져있던 조조는 장송을 무시하였다.[* 이 때 양수가 장송에게 조조가 지은 병서를 보여주자 술자리에서 한 번 본 것 만으로도 외워내 양수가 놀라워하며 조조에게 다시 장송을 추천했다는 내용이 일부기구잡기에 남아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연의 부분 참고.] 관직도 영창군의 비소현령(比蘇―) 자리만을 주었고, 결국 장송이 불만을 품었다. 이내 조조가 적벽 대전에서 패하자 장송은 조조와의 관계는 끊고 유비와 제휴할 것을 유장에게 권하였다. 유장이 장송에게 누가 유비에게 사신으로 가면 좋겠냐는 묻자 장송은 평소 자신과 친한 [[법정(삼국지)|법정]]을 추천하였다. 이로써 유장은 [[유비]]와 연합하였고 이어서 법정과 맹달을 통해 수비할 병사 수천 명을 지원해주었으며 전후로 선물도 막대하게 하였다. 법정이 돌아와 장송에게 이르길 유비에겐 웅대한 계략이 있다고 칭찬하였다. 둘은 이전부터 유장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남몰래 탄식해왔던 터라 유비를 받들 모의를 하고는 때를 기다렸다. 이후 조조가 한녕태수 장로를 정벌하려 한다는 소문에 유장이 두려워하였다. 장송이 설득하기를, “조조군은 천하무적입니다. 장로의 자원을 이용해 촉을 경략한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유비는 같은 종실이고 조조의 오래된 원수이며 용병도 잘합니다. 유비라면 장로를 틀림없이 쳐부술 것이고 그러면 익주는 튼튼해져 조조라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겁니다. 지금 [[방희]], [[이이(삼국지)|이이]](李異) 등은 자신의 공을 믿어 교만하며 그 마음도 외부 세력에 기운 것 같습니다. 유비를 부르지 않는다면 안팎에서 난을 접해 필패할 것입니다.”라 했다. 주부(主簿) [[황권]]과 종사 [[왕루]]가 완강히 반대하는데도 유장은 법정을 시켜 유비를 불러들였다. 법정이 유비에게 유장 몰래 헌책하기를, “장군의 뛰어난 능력으로 유장의 나약함을 틈타십시오. 주의 고굉(股肱)인 장송이 내응하겠습니다. 연후에 익주의 부유함을 바탕으로 험한 지세에 기댄다면 대업도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게 이룰 것입니다.”라 하였다. 유비가 이에 응하였다. 유비가 삼파(三巴)를 거쳐 광한군 부현(涪縣)에 이르렀다. 유장이 직접 보병과 기병 3만여 명을 이끌고 마중 나가 성대한 환영 행사를 벌였다. 장송이 법정으로 하여금 ‘이 자리에서 바로 유장을 덮치는 게 가능하다’고 유비에게 고하게 하였다. 방통 역시 같은 진언을 하였으나 유비는 중대한 일이니 창졸간에 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유장은 유비를 행 대사마, 영 사례교위로 추천하고 유비는 또한 유장을 행 진서대장군, 영 익주목으로 추천했다. 유장은 유비의 군사를 늘려주어 장로를 공격하도록 하고 또한 백수군(白水軍-백수는 광한군 백수현)을 지휘하도록 했다. 유비의 군사는 통틀어 3만여 명에, 수레, 갑옷, 기계, 물자가 매우 많았다. 이 해, 유장은 성도로 돌아갔다. 유비는 북쪽으로 가맹(葭萌-광한군 가맹현)에 도착하고, 즉시 장로를 치지 않고 은덕을 후하게 베풀어 중심(衆心-민심)을 거두었다. 212년, 조조가 동오를 치려 하자 유비는 방통의 계책 중 두 번째 것을 선택해 [[유수구 전투]] 중인 [[손권]]을 돕겠단 구실로 동쪽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장송은 유비의 진의를 몰랐기에 유비와 법정에게 편지를 써 ‘이제 막 대사가 실현될 참인데 어찌 관두고 가버립니까!’라 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장송의 형인 광한태수 장숙이 화가 미칠까 겁이 나 유장에게 이 사실을 밀고해 버렸다. 이에 추악한 정황을 알게 된 유장은 장송과 그의 일가를 다 참해버리고 유비에게로 향하는 교통을 차단하였다. 유비가 이것을 빌미로 유장이 준 병사와 군량을 가지고 자신의 친족을 향해 전쟁을 개시하였다. [[배송지]]가 《삼국지》선주전에 주석을 달며 인용한 [[위소]](위요)의 《오서》(吳書)에서는 법정이 유비와 밀약하기 전에 장송이 먼저 유비를 대면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하였다. 또 익주의 병기·물자·인마의 수량, 각 요해처의 거리 등 그 허실에 대해 유비가 묻자 모든 정보를 알려주고 지도까지 그려주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유장전〉, 〈선주전〉, 〈법정전〉에 의하면 장송은 유비한테 파송된 적이 없다. [[사마광]]은 통감고이에서 이를 《오서》의 오류로 보아 《자치통감》에 삽입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