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영신 (문단 편집) == 개요 == [[대한민국]]의 [[기업인]]. [[애경그룹]] [[회장]]이다. 1936년 [[경기도]] [[경성부]] 명륜정1정목(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1가)에서 아버지 장회근(張晦根)과 어머니 문금조(文今祚) 사이의 4남 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 당시 문맹률이 엄청났던 시대였음에도 부모님이 모두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였다.[* 아버지는 [[와세다대학]],어머니는 [[츠다주쿠대학]] 출신이다.] [[서울혜화초등학교]], [[경기여자중학교]], [[경기여자고등학교]], [[미국]] Chestnut Hill College를 졸업하였다.[* 본래 부유한 집안이었으나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잠시 가세가 기울자 어떡하면 돈을 안 들이고 대학에 갈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미국 유학 시험에 합격, 전액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다. 그런데 장학금을 끝까지 받으려면 B+ 이상의 학점을 받아야해서 한동안 굉장히 고생했다고 한다.] 애경그룹 창업주인 [[채몽인]]과 결혼하였다. 당시 양가 어머니들이 친구사이여서 장영신이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다만 나이차이가 있어서 평소 ‘아저씨’라고 불렀다고 한다.[* 채몽인은 1917년생, 장영신은 1936년생이다. 무려 19살 차이다.] 그래서 청혼도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채몽인은 기회가 있을때마다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포즈를 했고 결국 장영신이 대학 졸업 후에 결혼에 골인한다. 1970년 [[채몽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삼경화성(현. [[애경케미칼]])을 경영하였다. 1990년대에는 사업분야를 확장하여 애경백화점(현. [[AK플라자]])을 설립하였다.[* 이 백화점 사업은 다름아닌 장남 채형석 부회장이 제안했다고 한다. 다만 서울시내 백화점 경쟁이 치열해지던 당시 상황상 명동이나 강남이 아닌 구로동 애경유지공업 공장부지를 선택하게 되었고 구로 주민들에게 문화공간을 만들어주겠다는 명목 하에 개업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공단지역이던 구로에 백화점이 들어서자 백화점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거나 배추(!)를 절이는 등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는데 장영신 회장이 사람사는데가 다 그렇지 않냐며 용인해 주었다고 한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초대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도 지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