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저축 (문단 편집) === 정의와 역사 === ||||<:> '''{{{#FFFFFF 언어별 명칭}}}''' || || '''[[한자]]''' || {{{+1 貯蓄}}} || || '''[[영어]]''' || Savings, Deposit || || '''[[중국어]]''' || [ruby(储蓄, ruby=chǔxù)] || || '''[[일본어]]''' || [ruby(貯蓄, ruby=ちょちく)] || 사전적 의미로 '''절약하여 모아 둠'''을 의미한다. 전세계적으로 볼때 저축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농업혁명]]으로 먹고 남은 것을 비축하면서 시작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저축이 장려되었다. 이는 당시 빈국이었던 한국에서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줄 자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1964년 ‘저축의 날’이 제정되고 1969년 ‘저축증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 등 제도적 기틀이 갖춰진 것을 시작으로 계속 국가에서 장려되어 그로 인해 1970-80년대 들어 저축이 고속 경제성장을 이끄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고, 1971년에는 국내 저축 1조 원을 달성하면서 기념대회와 전시회 등이 여러 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공익광고협의회]]에서 만든 1호 [[공익광고]]도 '저축으로 풍요로운 내일을'이었다. 어린이들에게도 교육과정에서 저축을 권장하는 분위기였는데 이런 사회 분위기를 잘 알려주는 동요가 익히 잘 알려진 [[https://www.youtube.com/watch?v=KQjt1DICqOE|땡그랑 한 푼]]. 1988년에는 총저축률이 사상 최고치인 38.1%에 달하면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저축 열기’가 지속됐었다. 이러한 영향 때문에 대한민국 [[베이비붐 세대]]들은 소비를 거의 하지 않고 은행에 저축을 하거나 돈을 모아두는 저축[[만능주의]] 사상이 팽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시아 금융위기 및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수신금리가 점점 내려가자 저축은 아래에 나와있듯이 오히려 구성의 모순(fallacy of composition)같은 손해를 발생시키게 되어 저축량이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그 대신 [[중산층]] 이상 계층 사이에선 각종 금융 상품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드래곤볼]]》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는 〈저금전사 캐시〉이라는 단편을 그린 적이 있다. 《V점프》를 라이선스한 한국의 게임잡지 《V챔프》에서는 〈저축전사 캐시맨〉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