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저팔계 (문단 편집) === 배경 === 서유기에 등장하는 돼지 괴물이자 [[삼장법사]]의 두 번째 제자. 본명은 저강렵(豬剛鬣).[* [[최유기]]의 영향으로 저오능이 본명이고 저팔계가 법명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틀린 말이다. 본명은 저강렵, 법명은 저오능(猪悟能), 저팔계는 별명이다. 이 당시 불가에서는 같은 스승을 둔 제자들은 법명에 돌림자를 사용하였는데, 현장 삼장의 세 제자들은 깨달음 오(悟)자 돌림자를 사용한다. 각각 오공, 오능, 오정. 단, 똑같은 오자돌림이지만 오공의 법명은 수보리조사한테서 받은 것이고 오능과 오정은 먼 훗날에 관세음보살한테서 받은 것이다. 여담으로 삼장법사의 제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본명이 명시되어 있다. 손오공의 경우는 원래 이름도 없는 원숭이였다가(굳이 따지자면 미후왕이지만 이것도 별호에 가깝다) 수보리조사의 제자가 되면서 오공이라는 법명을 받았고, 사오정은 본래 인간이었다가 도를 닦아 하늘에 올랐다고 자기소개를 한 적이 있으니 인간 시절~권렴대장 시절의 본명이 있을 법은 하지만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고 불가에 귀의해 관세음보살에게서 법명을 받은 후로는 법명인 사오정이나 별명인 사화상으로만 불린다.] 머리가 [[돼지]](정확히는 멧돼지)인 [[수인]]이다. 사용하는 무기는 상보손금파(上寶沁金耙)로, 이빨 아홉 달린 쇠스랑 모양의 무기다. [[여의봉]]만큼은 아니지만 서유기에서 꽤나 강력하고 유명한 무기. 여의봉보다는 급이 낮은 무기지만, 애초에 여의봉은 무기가 아니라 해저의 깊이를 재던 무식하게 커다란 도구였던 반면 상보심금파는 처음부터 저팔계를 위해 만들어진 호신병기다.[* 때문에 가끔씩은 여의봉보다 더 상위의 보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옥화현에서 사자 요괴가 일행의 무기를 훔쳤을 때 잔치를 열었는데 잔치의 이름이 정파회, 즉 저팔계의 쇠스랑이 메인이었다. 도둑맞은 입장이긴 하지만 이 말을 듣고 저팔계는 싱글벙글했다.] [[태상노군]]의 팔괘로에서 만들어졌으며 무게는 5,040 근. 다만 겉모습은 영락없는 농기구라서, 저팔계를 만난 요괴가 무기가 고작 쇠스랑이냐고 비웃고 저팔계가 발끈해서 이 무기의 내력을 줄줄 설명하는 장면도 종종 나온다. 원래는 천계의 수군대장인 천봉원수(天蓬元帥)였지만, 취중에 [[항아|월궁항아]]를 덮치다가[* 2010년 드라마판에서는 삼장에게 과거이야기를 할 때 항아와 매일 만나다보니 정이 생겼고 어느날 아예 잔뜩 취한 채로 '''"[[후예]] 같은 놈은 잊으시고, 천봉원수인 저를 만나주세요!"'''라고 고백해버렸다. 항아의 역린을 아주 제대로 건드린 셈이다. 항아가 처음엔 그만두라고 했는데 안들으니 옥황상제앞에서 저팔계를 고소했고, 옥황상제는 취중진담이라며 곤장2000대에 추방처분을 내린다] 잡혀 '''철퇴 2천대'''를 맞고 지상으로 추방당했다. 이 때 잘못 들어간 곳이 암퇘지의 태내라 [[돼지]]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태어나자마자 어미 돼지랑 다른 새끼 돼지들을 물어죽이고 요괴가 되어 난이저란 여괴와 결혼한다. 난이저가 죽은 후 복릉산으로 들어가 길가는 사람들을 잡아먹는 악행을 저지르다가 어느날 취경인을 물색하러 당나라에 가던 [[관세음보살]]을 덮쳤고, 보살의 제자인 혜안 행자[* 출가하기 전 이름은 목타로, 탁탑천왕 이정의 둘째 아들이자 [[나타]]의 형이다. 관세음보살의 제자가 되면서 이름을 목차로 고치고 혜안을 법명으로 삼았다고 나온다.]와 싸우다가 관세음보살의 신분을 알게 되자 저오능이라는 법명을 받고 경 가지러 가는 길에 동참하기로 한다. 삼장법사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좀이 쑤셨는지, 멀쩡한 남자로 변신해 복릉산 아래의 마을 고로장으로 가서 데릴사위를 구하는 부잣집에 찾아가 덜컥 합격해 결혼한다. 이때 결혼한 아내의 이름은 고취란. 결혼한 후에는 열심히 일을 하긴 해도 점점 본색을 드러내 부인 취란을 별채에 감금하고 요술을 부려 마을 사람들을 겁주고는 했다. 장인어른은 질릴대로 질려 제발 이 요괴 사위를 퇴치해달라고 삼장법사 일행에게 빌었다. 그나마 일은 열심히 하는 데다 잘하는 편이라 집안은 부유해졌다지만, 딸자식을 부모도 보지 못하게 감금해놓은 데다가 육식만 안 할 뿐[*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무렵 저팔계는 8가지 음식을 금하고 있었는데, 그 중 3종은 고기다. 이것만 보면 이 세 종류 이외의 고기는 먹었을 듯 싶기도 하지만, 장인어른이 삼장법사에게 푸념할 때 보면 그나마 육식은 하지 않아 식탐이 엄청난데도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말한다.] 먹기도 엄청나게 먹어대는 데다가 본색을 드러낸 뒤론 흉측한 외모에 온갖 도술을 부리고 다니니 그럴 만하다. 결국 [[손오공]]을 만나 대판 싸웠지만, 고대하던 삼장법사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냅다 항복하고 귀의하였고, 삼장의 제자가 되며 오능이라는 법명을 받게 된다. 삼장을 따라나서면서도 일이 파토 나면 돌아올 거라며 부인 취란에게 기다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훗날 다른 작가가 쓴 '후서유기'라는 2차 창작에서는 이 기다리고 있던 부인이 낳은 저팔계의 후손이 이쪽 일행의 저팔계 포지션을 맡게 된다.] 이 때 삼장법사에게 기다리는 동안 스스로 계율을 지키기 위해 오훈삼염(五葷三厭)이라 하여 불가에서 금하는 5가지 음식[* 일명 [[오신채]]라 부르는 그것. [[대파(식물)|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이다.]과 도교에서 금하는 3가지 음식[* 하늘에서 금슬이 좋은 기러기, 땅에서 집을 지키는 개, 물속에서 군신의 의리가 있는 뱀장어의 고기라고 한다.]을 금하고 있었는데, 이제 만났으니 그 계율을 풀겠다고 하자 삼장법사가 어차피 지키고 있던 거니 불계에 들어온 이상 계속 지키라고 권유하며 '저팔계'라는 별명을 지어주게 되고, 이후로 대부분 저팔계라고 부르게 된다.[* 판본에 따라서는 '팔계'를 팔재계, 즉 식탐, 성욕, 재물, 고자질, 거짓말, 게으름, 두려움, 공명심이라는 8가지 번뇌의 근원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이 8가지 계는 [[상좌부 불교]]에서 정리한 팔재계(aṭṭhaṅga-sīla)와는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다.] 여행이 끝나고 서천에 도착한 이후 석가여래로부터 그동안의 공을 인정받아 정단사자(淨檀使者)에 임명된다. 이때 스승님이랑 원숭이 형[* 猴哥. 원작에서 저팔계가 손윗서열인 손오공을 부르는 존칭이자 한편으로는 깐죽거리면서 늘 부르는 호칭이다. [[날아라 슈퍼보드]]에서 항상 저팔계가 손오공에게 '손형'이라고 하는 게 고증을 따른셈. 猴은 원숭이 후 라고 읽는다.]은 부처가 되었는데 자기는 왜 사자가 되었냐고 불평을 하였는데, 석가여래가 저팔계가 음식을 탐하는 것은 본능이라 어쩔 수 없으니 공양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정단사자로 삼은 것이라고 달랜다.[* 아직도 그런 거나 따지고 있으니 부처에 오르지 못한다고 꾸중하는 바리에이션도 있다. 천웨이동 서유기에선 불문에 귀의하고도 여색을 밝혀 성불을 못한다고 나왔다.] 그런데 임명 전에 민가에서 대접받을 때, 정과를 얻었기 때문에 식사량도 상당히 줄어버렸다는 묘사가 등장했다.[* 다만 '''저팔계 기준으로''' 줄어든 것일 뿐이다. 어떤 판본에서는 아예 정과가 묘사되지 않고 [[조삼모사|이에 자기 직위에 엄청 만족해하기도 한다.]]] 서유기 초반부, 천계에서 한참 깽판을 부리던 손오공을 제압한 후 돌아가려는 석가여래에게 '옥황상제께서 감사 잔치를 벌이신다 하니 돌아오시라'는 말을 전한 사람이 천봉원수로 나온다. 작 중 명시되지는 않으나 어쩌면 그 당시 저팔계였을지도 모른다.[* 이때는 돼지머리 요괴가 아닌, 술버릇이 좀 심하게 안 좋긴 해도 어엿한 천군의 장수였다.] 서유기가 맨 처음 쓰일 당시에는 성이 주(朱)씨, 즉 '주팔계'였다. 마침 돼지를 뜻하는 猪가 朱와 발음이 비슷해서, 사람 이름처럼 보이게 하려는지 朱씨로 했는데 나중에 세워진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성이 朱씨로서 朱씨가 명나라의 국성이 되어버려 [[피휘]]를 하고자 저(猪)씨로 고쳐졌다고 한다. 조선 초기의 중국어 학습서인 박통사(朴通事)에 수록된 서유기 발췌분에 '朱八戒'라 쓰인 부분이 있다. 현대 [[표준중국어]]에서도 猪와 朱는 zhū로 발음이 같으며, 비슷한 작명 방식으로 현대 명작 동화로 꼽히는 '돼지책'의 중국어 제목도 '朱家故事(朱씨 가족의 이야기)'로 정해졌다. [[청나라]]가 중원을 완전히 장악한 후에도 저팔계가 원래대로 주팔계로 돌아오는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