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문단 편집) == 전대협 이후 == 역대 전대협 의장들은 다들 감옥에서 나온 후에는 학생 시절의 NL 노선에서 이탈해서 나름대로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다. [[한총련]]과 달리 전대협은 막가파식 투쟁을 한 것은 아니다. 그에 반해 [[한총련]] 출신이 양지에서 활동하는 경우는 정말 찾기 힘들며 한총련이라 그러면 종북 이미지, 이적단체로서의 이미지가 지금도 투영되어 있다. 자기 과거를 숨기고 언론에 두문불출하는(심지어 개인 사업을 하는) 경우가 절대 다수이며 음지에서 활동하다 욕만 먹는 경우도 있다. 1기부터 4기까지는 정치권의 [[386]] 영입 붐을 타고 2000년을 전후해서 [[민주당계 정당]]을 통해서 제도권 정치에 진입했다.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 라인을 탄 이들은 대외적으론 [[햇볕정책]], 사회적으론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지만, 경제적으로는 [[한미 FTA]]를 지지하고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하는 등 보수 정당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위 [[486]]세대와 [[친노]]의 핵심으로 현재 민주당 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전대협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계파 라인을 탄건 아니고, 여러모로 이합집산이 이뤄졌기 때문에 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았기도 했다. 5기 김종식은 졸업 후에 같이 활동하자는 선배들의 제안을[* 정확히는 감옥에서 나온 직후에 한양대 직계 선배인 임종석이 찾아와서 같이 386세대의 청년운동을 하자고 제안했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1990년대 중후반 청년 운동이란 명분하에 결집한 386세대의 학생운동 출신들은 결국 집단적으로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전부 제도권 정치에 투신했다.] 거부하고 광주에서 지역 공동체 운동을 하다가 민주노동당 [[최순영(정치인)|최순영]] 국회의원의 보좌관을 거쳐서 직접 지방선거에도 출마하였다. 이후 민주노동당을 나와서 환경운동에 뛰어들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녹색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http://www.redian.org/archive/5728|레디앙 인터뷰 1]] [[http://www.redian.org/archive/5841|레디앙 인터뷰 2]] 6기 태재준은 사실 대학 재학시에도 관악 자주파라고 불리던 비주사 NL 계열[* 소위 NL-left.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 NL계에 합류했던 CA 다수파의 후신이다.]로 기존 NL주류계[* 이른바 자주대오 = 주사파]와의 마찰로 활동에 심각한 제약을 받았고[* 당시 서울대 운동권 내부 정세로 주사파 계열 단독 후보가 나오지 못하여 태재준을 내세웠다고 한다.] 얼마 안 가 체포돼 감옥에 갔다.[* 사실 태재준은 본인의 활동은 미약했지만, 학생운동 그리고 길게 보면 2000년대 진보정당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학생운동 시절 태재준을 따르던 비주사 NL 그룹은 1993년 문민정부 출범에 맞춰서 온건 PD 그룹과 통합해서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을 형성하면서 NL 노선에서 완전히 이탈했다. 이들은 무조건적인 정권 타도, 반체체 혁명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관점에서 현실적인 사회개혁 노선을 제시했고 졸업 후 민주노동당 혹은 시민운동에 뛰어들어서 복지국가 노선을 주장하였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할 때 실제 정책 파트에 가장 많은 인력을 제공한 건 바로 21세기 출신들로 2017년 현재까지도 학계와 언론, 시민단체, 제도권 정당 등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출소 후 졸업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학위과정을 마쳤다. 2000년대 들어서 복지국가 건설을 주장하면서 친민주노동당 성향을 보였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하지 않고 미국 시카고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시카고 대학 특유의 엄격한 학사관리와 고문 후유증, 시카고 총영사관 정보 요원의 동향 감시로 인한 스트레스가 겹쳐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우여곡절 끝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귀국했지만 학계 생활을 채 1년도 하지 못하고 폐인이 되었다.[* 현재는 서울역 앞 및 서울지하철 4호선 객차에서 자신이 국가정보원에게 독살을 당할 뻔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본인의 주장이나 블로그를 참조하면 전형적인 [[조현병]] 증세임을 알 수 있다. [[http://blog.naver.com/driftingstar|태재준 블로그]]] 증세가 악화만 되는지 2022년 5월부터는 해외 각지의 병원들을 돌아다니면서 고문장치를 빼달라고 하는 중이다. 1993년 전대협이 자체 해산하고 한총련으로 확대 개편된 이후 전대협 간부 출신들이 결집해서 1994년 전대협동우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이 전대협동우회를 통해서 역대 의장단 이외에도 전대협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학생운동가들이 조직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투신하였다. 대다수는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통합민주당으로 이어지는 [[민주당계 정당]]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노무현 정부 출범과 2004년 총선을 통해서 이들이 대거 제도권 정치에 진입하자 한국정치를 개혁할 새희망으로 주목받았다.[[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67000/2004/04/021067000200404210506021.html|한겨례21]], [[http://weekly.donga.com/List/3/all/11/73965/1|주간동아]] 하지만 참신성 이외에는 뚜렷한 정치적 실천이나 대한민국을 바꿀 독자적인 대안을 선보이는 데는 결국 실패했고 386세대로 불리우던 전대협 출신들이 조직적으로 캐리했던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는 침몰했고, 2010년대 이후에는 오히려 구태기득권으로 청산 대상으로까지 몰리게 된다. 이후 민주당이 2015년을 전후해서 엄청난 계파 갈등을 겪은 후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전대협 출신 정치인 중 상당수가 문재인 정부 내각에 입각했지만 당원들과 지지자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인물에 따라 [[케바케]]인 상황이다. 김문수, 하태경 등 극히 일부는 우파로 전향해서 [[뉴라이트(대한민국)|뉴라이트]]가 되었고[* 대표적인 케이스가 북한의 인권 탄압 참상을 알고 전향한 [[하태경]].] [[이명박]] 정부 출범 전후로 [[한나라당]]-[[새누리당]] 쪽으로도 입당하였다. 이들은 아스팔트 우파라고 불리는 [[극우]] 세력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전대협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단체는 동명의 다른 단체일 뿐이며 보수우파 단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