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국인민대표대회 (문단 편집) == 타국과의 비교 == 선거 방식이 [[민주집중제]]에 입각해 다른 다당제 [[민주주의]] 국가와 꽤나 차이가 난다. 한국으로 치면 기초의원이 광역의원을 뽑고, 광역의원이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을 뽑는 식.[* 물론 이런 식으로 국회의원을 뽑는 민주주의 국가가 없는 것은 아니나(대표적으로 [[프랑스]]와 [[독일]], [[인도]]) 이 경우에는 [[상원]]의원만 뽑고 권한이 작다.] 이러한 형태라 항상 과반수 득표를 하는 후보들끼리 결국 최상의 집행권을 장악하게 된다. 설령 중국이 [[다당제]]로 전환하더라도 이러한 체제가 유지된다면 정당 투표와 투표 결과의 불비례성이 굉장히 크게 나타날 것이다. 중국의 전인대는 역사상의, 그리고 현재의 다른 공산국가들과 비교해서도 특이한 형태의 의회이다. [[세계]] 최초의 공산국가 [[소련]]이 수립될 때 [[공산당]]이란 이론적으로 관료기관이 아니라 [[혁명]]을 위한 [[전위대|전위정당]]일 뿐이고 각 지방의 평의회([[소비에트]])는 이론적으로 무당파적으로 입법행정권을 가진 지방자치기관으로 기능하는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소련 공산당]]이 모든 걸 장악해버렸다. 중국은 아예 이 '장악된 뒤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공산당 주도 독재체제를 설립했다. [[간선제]] 의회를 채택한 [[국가]]가 없지는 않지만 그런 국가들은 대부분이 [[간선제]] 의회를 [[상원]]으로 두고 [[직선제]] 의회를 [[하원]]으로 둔다든지 하는 식의 보완을 행한다. 이 분야의 원조인 소련조차도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의 [[대숙청]] 직전에는 [[안드레이 즈다노프|즈다노프]]의 제의에 따라 [[민주집중제]]를 혁파하고 직선제는 물론 '공산당내 다자 후보 선거' 까지 도입하려 시도했다. 물론 대숙청으로 실패하긴 했지만 [[최고 소비에트]]의 직선제 자체는 소련이 망하는 그날까지 유지되었다. 하다못해 [[북한]] [[최고인민회의]]도 실제 위상은 전인대만도 못하지만 일단 명목상으로는 직선제다. 묘하게도 [[조선인민공화국]]의 [[입법부|입법기관]]이라 할 수 있는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가 이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이름이 같은 것으로 오인받는다.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는 각 지방의 [[인민위원회]]에서 뽑힌 대표자들이 구성하는 입법기관으로, [[간선제]]인 전인대와 원리는 같지만 [[시대]]와 [[개념]]이 많이 다르다. 전인대는 [[1954년]]에야 개최되었고,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는 [[1945년]]과 [[1946년]]에 한번씩만 열리고 [[미군정]]에 의해 해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