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국칠웅 (문단 편집) == 상세 == 전국시대를 주도했던 [[진(통일왕조)|진(秦)나라]], [[초(춘추전국시대)|초(楚)나라]], [[제(춘추전국시대)|제(齊)나라]], [[연(춘추전국시대)|연(燕)나라]], [[조(전국시대)|조(趙)나라]], [[위(전국시대)|위(魏)나라]], [[한(전국시대)|한(韓)나라]]의 7개 국가를 이르는 말이다. 이 7개 국가 외에도 [[중산]](中山), [[송(춘추전국시대)|송]](宋), [[정나라|정]](鄭) 등 다른 국가들이 있었다. 특히 송나라는 [[송강왕]] 시기에 타 약소국들을 멸하고, 전국칠웅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으나,[* 타 칠웅들처럼 군주의 호칭을 왕으로 격상시키기도 했다.] 기원전 286년 제, 위, 초 연합군에 공격당해 멸망한다. [[주나라]] 왕실도 더이상 관심을 못 받아서 그렇지 두 개로 쪼개진 채 전국시대까지 남아있었다. 흔히 보는 전국칠웅도는 한눈에 보기 좋게 이와 같은 약소국들을 표시하지 않은 것이다.[* 월나라의 경우에는 전국시대 초반만 해도 그래도 세력이 유지되었지만 이후 초나라에 밀려 전국시대 중기에 멸망한다.] 전국시대 초기에는 각 나라의 균형이 비교적 잡혀있었던 시기로, 이 시기에는 위나라가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위문후 때가 전성기였고 그 후대는 왕을 칭할 정도가 되어 [[위혜왕]]이라고 불리나, 제나라에게 크게 패하면서 국력이 기울기 시작했다.[* 유명한 [[손빈]]과 [[방연(전국시대)|방연]]의 일화나 맹자의 첫 구절인 맹자현양혜왕(孟子見梁惠王)이 유명하다.][* 사실 애초 위혜왕이 왕을 칭한 시기부터가 위나라가 쇠퇴일로를 걷기 시작한 시기였는데 이미 칭왕 7년 전에는 [[마릉 전투]]에서 제나라에게 대패하여 방연과 태자 신이 전사하는 참극을 겪었고 그 1년 뒤에는 하서 지역을 잃고 도읍인 안읍이 위태로워져 대량으로 천도했다. 이 점에서는 한나라와 비슷해서 한나라도 이미 한소후 말기에 옛 수도였던 의양을 잃는 등 쇠퇴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 후에는 제나라가 강했는데, 손빈이 활약하던 [[제위왕]]과 그 아들인 [[제선왕]] 시대가 절정이었다. 서쪽의 진나라와 동제, 서제 칭호를 나누어갖자는 논의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후대인 제민왕 시대에 연나라의 [[악의(전국시대)|악의]]에게 크게 패하면서 제나라의 국력도 기울었다.[* 이와 더불어 제민왕의 탐욕 역시 제나라의 쇠퇴에 기여했다. 위나라, 초나라와 연합하여 송나라를 멸망시킨 제민왕은 막강한 국력만 믿고 위나라, 초나라에게 땅을 나누어주려고 하지 않아 타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했고 결국 악의가 이끄는 5국 연합군에게 멸망 직전까지 몰렸다.] 진나라는 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어서 중원의 국가들과의 분쟁에서 지속적으로 국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었으며, 지형상으로도 유리한 점이 있었다.[* 이후로 중국 정치에서 자주 언급되는 관중이 중요성이 바로 이것이다.][* 대신 서쪽의 이민족들과 인접해 있어서 그들과 지속적으로 싸워야 했다. 이들 중 한 일파인 견융족이 서주시대를 끝냈음을 감안하면 진나라에게는 큰 부담이었고 실제로도 역대 진나라 국군들 중 몇 명이 이들과 싸우다 전사했다.] 특히 진나라는 진효공과 [[상앙]]의 변법 이후 국력이 급상승하였다. 전국시대의 후반부는 계속 성장하는 진나라와 이를 견제하려는 다른 여섯 나라의 대결이 중심이다. 진나라 득세 이후 [[소진(전국시대)|소진]]의 합종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으나 [[장의]]의 연횡책에 깨어졌다. 진 못지 않게 강했던 초나라는 [[장의]]의 농간에 초회왕이 진나라 포로가 되는 일이 있은 후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그나마 장평대전 이후 쇠망 직전의 조나라를 위나라와 함께 구원하는데 일조하기는 했는데 이마저도 장평대전의 결과에 위축되어 있던 고열왕을 모수가 협박에 가까운 방법으로 설득한 끝에 이뤄낸 성과다.] 한나라와 위나라는 강대한 진나라에 항상 눌려있었다[* 그래도 위나라는 신릉군의 활약 덕분에 장평대전으로 망하기 직전의 조나라를 구하고 합종군을 이루어 진나라의 동진을 저지하기도 했다.]. 조나라는 [[조무령왕]] 시절에 군세가 강하였고 이후에도 [[인상여]], [[염파]] 등의 활약으로 잘 버틴 편이나 결국 진나라 [[백기(전국시대)|백기]]에게 30만 대군이 떼죽음을 당한 [[장평대전]] 이후 결정적으로 기울었다. 제나라와 연나라는 상대적으로 평온하였으나 다른 나라들이 무너지자 버틸 수 없었다. 여담으로 결국 승자로 올라선 진나라와 달리 전국통일에는 실패해서 가려지는 부분이 있으나 사실 전국칠웅의 나머지 여섯 국가들도 전원이 상고시대의 천자국들이었던 [[하상주]] 세 왕조들의 국력을 훨씬 넘어선 상태였다. 전국칠웅에 해당되는 국가들은 모두 총력전 체제를 위한 대량 징집 등이 가능했는데 이것만으로도 사실상 성읍 국가들이었던 하상주 세 왕조들의 국력을 아득히 넘어선 것이다. 각 나라별로 보다 자세한 전성기와 쇠퇴기는 아래의 문단들을 볼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