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국칠웅 (문단 편집) ==== 전성기 ==== 그래도 이 나라의 전성기를 뽑아보자면 [[신불해]]가 재상으로 있었던 기원전 355년부터 기원전 341년까지로, 초나라와 위나라가 초도왕과 위문후의 사후에 쇠퇴하기 시작했고, 조, 연, 진이 아직 강성하기 이전 15년 동안 부흥해 진나라와 일시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국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보면 진나라는 진효공 재위기로 당시 상앙의 변법으로 강성해져가고 있었고 초나라는 초선왕 재위기로 쇠퇴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강성한 편이라서 [[호가호위]] 고사의 주인공이 바로 초선왕이다. 제나라는 제위왕 시절로 당시 점차 강성해지고 있었으며 연나라는 연후문공 시절로 대내외적으로 소진의 합종책 외엔 별 일 없었고 조나라는 성후와 숙후 시절로 성후 시절에는 수도가 함락당하고 숙후 시절에는 위, 제 두 국가와 투탁거리는 수준이었으며 위나라는 위혜왕 시절로 크게 국력약화가 심하진 않았지만 딱 기원전 341년에 마릉 전투에서 진나라에게 대패한다. 즉 진과 제는 강해지고 조와 연은 별달리 대단한 일 없이 지내고 초는 좀 강함을 유지하고 위는 약해지던 시기였다.] 신불해는 [[정나라]]의 천민이었지만, 기원전 375년에 정나라가 멸망하자, 한나라로 와서 재상이 되었으며, 법가 사상을 정비해 이후 한비자의 법가 사상의 기반이 되었다. --정작 한비자한테는 간신들 제어 못 했다고 엄청 까였지만-- 정치적으로도 그의 치세 동안 상공업과 문화가 발전해 [[소진(전국시대)|소진]]이 100발 쇠뇌나 귀신 한나라 병사라고 말할 정도의 국력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절망스런 국력을 지녔던 한나라지만 한애후 시절, 정나라를 정복하고 정나라의 수도, 신정으로 천도했을 때 당시 전성기의 끝무렵을 달리던 위나라에게는 부담감을 안겨주었고 이는 결국 [[마릉 전투]]의 원인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비록 위나라의 전성기를 끝장낸 나라는 제나라였지만 발단은 한나라가 제공한 것 그리고 소후 시기만 잘나간건 아니고 문후, 애후, 의후 시기도 소후 이후의 한나라와 비교하면 매우 잘나가서 문후 시기에는 제나라와 2번 싸워 땅을 빼앗았고[* 이 때 제나라 군주는 제후 섬이다.] 애후 시기에는 경후와 열후 시기에 대립했던 정나라를 멸망시켰으며 의후 시절에는 위나라의 도읍인 안읍을 공격하기도 했는데 당시 위나라가 내란 중인 것과 조나라, 한나라가 동시에 쳐들어온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그래도 전성기를 달리던 위나라를 털어버린 것이고 조성후 시기의 조나라는 위나라에게 압박을 많이 받던 국가인걸 감안하면 나름 잘나간 시절이라고 볼 수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