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기밥솥 (문단 편집) ==== 코끼리 표 전기밥솥 사건 ==== 때는 1983년, 전국주부교실중앙회[* 현 소비자교육중앙회] 부산지부 노래교실 주부 17명이 일본 단체 여행 중 [[시모노세키]]를 방문해 '''코끼리 밥통을 비롯한 일제 물건을 잔뜩 사들고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20800329207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02-08&officeId=00032&pageNo=7&printNo=11496&publishType=00020|귀국]]'''했다. 이를 목격한 [[아사히신문]]이''' '한국인 관광객 덕분에 매출이 늘어난다' '''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다.[* 1983년 1월 31일, 아사히 조간신문 3면.] ~~30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이 [[유커|중국인 관광객]]덕분에 비슷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하도록 완화[* 하지만 완전 자유로운 것도 아니라서 연령제한이 있었고, 신상정보를 자세하게 적고 조사했다. 간첩 방지라며 수익이 얼마나인지, 가족문제까지 죄다 적어야 했다. 완전히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건 1989년부터이다.]하니까 연초부터 걸신스럽게 해외쇼핑을 했다고 하던 시절, 세관에서는 당장 해외여행자를 수소문해 이들의 통관 상황을 재차 확인해야 했다. 당시 경찰도 여행을 주선한 H여행사 환전과정 등에 대해 수사를 펼쳤다. 결국 관광여행사 간부 2명이 외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되고 여행자 1명은 입건됐다. 이들이 반입한 11종(453만 5,000원)은 과세통관이 되고 나머지 카메라 외 20종(302만 7,000원)은 자진반납으로 유치됐다. 이 당시 한국은 경상수지 만년 적자 국가에 외채도 많던 시절인지라 외화수익 획득에 전정긍긍하던 시절이었다. 자유무역보다는 보호무역에 더 집착했던 시대였고, 당연히 언론사들은 이들의 행태를 신나게 까대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들은 [[전두환]]이, --애꿎은-- 비서관을 질책해서[* 경제과학담당 비서관. 아마도 [[오명(정치인)|오명]] 씨로 추정된다.] 그에게 국내 전자사업 기술 관련 보고를 받고, '''"에라이. 밥통같은 놈들. 밥통도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주제에, 어떻게 일제 밥통을 사가지고 들어오는 여자들을 욕해? 왜 그네들이 일제 밥통을 살 수밖에 없느냐 말이야? [[까라면 까|이봐, 이거 우리가 만들 수 있어, 없어? 6개월 안에 다 만들어.]]"'''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에 전두환은 손톱깎이, 면도기, 칫솔 등 ‘생활필수품 100개 품목 품질향상 전략’을 지시하고 한국 산업의 현대화를 이끌었다-고 자화자찬을 하는데...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면 현실성이 극히 떨어지는 이야기다. 시장 경제가 군대도 아니고 정치 지도자가 조인트 깐다고 갑자기 품질 향상이 되고 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랬으면 사회주의는 이미 지상락원~~ 현재 국내 전기밥솥 시장 70%를 지배하고 있는 [[쿠쿠]]의 전신이 이미 1978년에 설립돼서,[[http://news.donga.com/3/all/20061110/8371645/1|#]]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2100020921101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02-10&officeId=00020&pageNo=11&printNo=18878&publishType=00020|##]]국뽕을 잔뜩 주입하는 당시 언론에서도 '단열재가 평평하지 않고 김이 빨리 빠지지만 그건 마무리의 문제일뿐이고 어쨌든 기술차이 없음'하고 쉴드를 치고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21200329205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02-12&officeId=00032&pageNo=5&printNo=11500&publishType=00020|개선]]을 약속하는 게 최선일 정도였다. OEM 생산을 통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꾸준히 기술 개발을 하다가 IMF 이후 자체 브랜드로 제품 판매를 시작하고 코끼리표의 주력인 전기 보온 밥솥 보다 고급화된 전기압력밥솥 시장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1990년대 후반에서야 품질 경쟁에서 이겨나가기 시작했다. 손톱깎이와 면도기도 각 분야의 중견기업들이 수십년의 기술개발과 경쟁으로 품질향상을 이룩한거지 정부의 면피용 정책이 큰 영향을 끼친 분야가 아니다. 1980년 중반 ~ 1990년대 초반, 삼성, 금성(현 LG), 대우 등 가전 3사는 기술력에 많은 투자를 하면서 일본제 밥솥에 대응하는 전기밥솥을 개발하여 시장에 출시,일본제 밥솥의 점유율이 점점 낮아졌고, 예전의 명성을 찾지 못하였다. 1990년대 초, 한일가전(현재의 노비타, 삼성전자 자회사)은 조지루시와 기술제휴하여 여러 제품을 출시하였고, 삼성전자의 이름으로 국내에 판매하였다. 이젠 코끼리표 밥통을 이야기하면 노년층이라고 해야할 정도. 이젠 국내에서 (정식수입으로) 파는 조지루시 제품(조지루시 코리아)도 보온병이나 텀블러가 주력이고, 전자제품도 고작해야 전기냄비나 전기 주전자같은 제품뿐으로 전기밥솥은 아예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