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도전 (문단 편집) === 왕권/신권 관련 시각차 === 정도전은 신권 중심 정치, 입헌군주제와 가까운 정치를 추구했다는게 일반적인 학설로 이어져왔으나, 일각에선 정도전이 오히려 왕의 절대 권력을 지지했다는 설도 제기해 그에 따른 찬반양론도 나왔다. 일단 절대 왕권을 지지했다는 쪽에선 경제문감과 경제문감별집에서 보이듯 그는 왕이 강력한 인사권을 쥐고[* 재상에 대한 인사권이 중요한 내용이다. 왕은 재상을 등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재상은 그 자체로 결정할 권한이 없었다.] 그것을 토대로 신하들이 왕에게 아첨을 하지 않고 좋은 조언을 해주는 역할로 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경제문감 78쪽 상업(재상이 하는 일)에서 신하가 군주에 대해 충성을 다하고 재주와 능력을 다하는 것은 그 군주를 돕는(顯比) 도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등용하고 등용하지 않는 것은 군주에게 달려있을 따름이다.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어 보좌해서는 안 된다. 라고 그가 직접 말했다. 원문은 『經濟文鑑』 「相業」 顯比; 臣之於君 竭其忠誠 致其才力 乃顯比其君之道也 用之與否 在君而已 不可阿諛逢迎 求其比也] 즉, 정도전이 주장한 정치체계는 신권 중심의 입헌군주제 비슷한 것이 아닌 강력한 인사권을 쥔 현명한 왕이 능력 있는 신하들을 고루고루 등용시키고 그 신하들의 조언과 함께 왕이 나라를 가꾸는 정치로, 결국 재상 중심보다도 왕의 현명함이 중요하다는 주장.[* 법 자체만으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을 얻는 데에 달려있는 것(『朝鮮經國典』 「憲典」 捕亡斷獄; 法非徒善 惟在得人). 성인의 법은 사람이 있어야만 시행된다(『朝鮮經國典』 「憲典」 總序; 聖人之法 待人而後行)][* 출처: [[https://report.dbpia.co.kr/sambong_01/|정도전은 정말로 재상 중심의 조선을 꿈꿨는가?]], 「鄭道傳의 역사인식과 군주론의 기반: 『經濟文鑑』 의 분석을 중심으로」, 김인호, 2005, 『한국사연구』, 131, 257-284., 「『 經濟文鑑 』의 引用典據로 본 鄭道傳의 政治思想」, 도현철, 2000, 『역사학보』, 165, 69-102.] 허나 이에 대해선 반론도 있는데, [[국사편찬위원회]] 웹사이트의 기사 "정도전의 재상론"의 집필자는 [[조선경국전]]을 인용해서 "군주는 재주의 혼명강약(昏明強弱)이 같지 않기 때문에 항상 궁중의 비밀, 빈첩(嬪妾)들의 시중, 내시(內侍)들의 집무, 가마와 말과 의복의 장식, 음식의 제공에 이르기까지 오직 총재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재상’이라는 단어도 결국 총재가 어리석은 군주를 보상(輔相)하고, 백관과 만민을 그들의 마땅한 바를 잃지 않게 하는 것[宰]에서 파생한 것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즉, 재상은 "어리석은 군주"를 [[지도]] 및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출처: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treeId=010501&tabId=03&levelId=hm_073_0040|정도전의 재상론]]] 즉, 위의 "정도전은 정말로 재상 중심의 조선을 꿈꿨는가?"에서 제시한 설은 왕이 "현명하다"는 것을 전제로 서술하고 있으며, [[연산군]]과 같은 "어리석은" 왕이 있다면 견제할 수 있도록 재상에게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실제로 [[연산군]]이 대신들이 주도한 반정인 [[중종반정]]에서 폐위된 이후 왕이 멋대로 대신을 등용하거나 독단적으로 행동할 때 대신들이 "걸주(桀紂)"가 되면 안된다고 청한다. 걸주에 관한 내용은 [[걸왕]]과 [[주왕]] 문서 참조. 맹자에서도 "걸주"에 관한 말을 보면 알겠지만, 걸주와 같은 어리석은 [[군주]]는 "악독한 필부"이며, 마땅히 "주살"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정도전의 총재론은 [[조선경국전]]에는 있지만 [[경국대전]]에는 실리지 못했다.[* 출처: [[https://sillok.history.go.kr/id/kua_11607008_002|영조실록 52권 기사: 장령 이제담이 스스로 성인으로 여기는 마음으로 신하들을 경시하지 말 것을 청하다]]] 애초에 상기했듯 이 시절은 전제군주정이 기본 베이스인 시절이고, 재상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도만으로도 왕당파 견제 세력들의 무수한 딴지를 감내해야 했던 정치 상황을 감안한다면, 왕의 역할을 강조하는 얘기랑 재상의 역할을 강조하는 얘기가 동시에 나오는 것도 크게 모순될 것은 아니다. 극초기의 입헌군주제 모습 정도로 간주해도 될 듯하다.[* 굳이 따지면, 현대의 [[이원집정부제]]에 가까운 개념이다. 이원집정부제도 상황에 따라 [[대통령]]이 실권자가 되거나, 반대로 수상이 실권을 가지거나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데, 정도전의 주장은 이런 체제의 [[군주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