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두영 (문단 편집) == 과거 == [[파일:IMG_20201203_184401_180.jpg]]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사진 정두영은 정부 직할 [[부산시]](현 부산광역시)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출생했다. 그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암]]으로 투병하고 있었고 정두영이 2세가 되던 해 끝내 [[사망]]했다. 남편의 죽음으로 생계가 곤란해진 정두영의 어머니는 [[아기]]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거나 영양을 공급해주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는 아이들을 삼촌 집에 맡기고 [[재혼]]했다. 하지만 정두영이 5살 되던 해 삼촌마저 요란스런 조카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 보렸다. 그리고 정두영이 7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고아원]]으로 찾아와 정두영을 [[아버지|새아버지]] 집으로 데려갔다. 그대로 양친과 성장했으면 좋았겠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경제적 부담과 [[이부형제]]들과의 갈등이 커져서 정두영은 도로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고아원 안 남자 아이들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 같아서 세면 때리고 약하면 맞는 게 보통이었다. 선천적으로 [[단신|작은 체구]] 때문에 놀림과 괴롭힘을 많이 당하던 정두영은 결국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폭력’ 뿐이라는 것을 체득하고 말았다. [[무학]]인 정두영은 고아원에서 나온 뒤 [[범죄]]를 생계수단으로 삼아 살기 시작했다. 사실 나중에 보살펴줄 사람인 그의 형 정부영이 나타나긴 했다. 하지만 직업은 금은방 간판을 내건 '''[[장물아비]]'''였다. 그래서 자신이 돈이 될만한 걸 훔쳐오면 그 형이 팔아치우기로 했다고 한다. 즉 계속 범죄의 길을 걷게 된 것. 이 때 그는 그 형에 의해 한 여성을 소개받게 되었고 [[2000년]] [[2월]]부터 동거에 들어갔다. 그가 살인마의 흉악성을 어찌나 철저하게 숨겼는지 동거녀 및 그녀의 부모는 정두영을 '''"[[술]], [[담배]]도 안 하고 말수가 적으며 점잖고 매너 있어 성실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게다가 정두영 본인도 얼마나 그 여성을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체포 이후 해당 여성이 공범이 아니었나 조사에 들어간다고 하자 극구 부인하고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고 한다. 그가 이 정도로 그 여성과 가정을 차리는 것에 집착한 건 어린 시절 2번이나 어머니에게서 버림받는 등 불우한 가정 환경을 겪어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강박적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걸 위해 절도로 얻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놔 검거 당시 통장에 1억 3천만원이 있었다. 최종 목표는 10억을 버는 것이었으며 그러고 나면 결혼한 뒤 이 돈으로 [[PC방]] 같은 것도[* 혹은 성인오락실이었다고도 한다.] 차리고 아파트를 마련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평범하고 소박한 꿈을 가장 최악의 방법으로 이루려고 한 케이스. 하지만 설령 그런 돈을 모았다고 해도 평범한 삶을 살았을지는 알 수 없다. 이미 10대 때부터 자기를 불심검문하는 방범대원을 칼로 찔러 죽였고 강도질하는 데 방해가 되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무참히 죽인 것만 봐도 타인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존중 따윈 없었음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