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몽규 (문단 편집) == 생애 == 1962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13살 차 동생인 [[정세영]] 前 [[현대자동차]] 회장의 장남이자 [[외아들]]로 태어났다.[* 정주영과 [[정세영]]이 형제지간임에도 13살 차, [[정주영]]과 [[정몽필]]이 부자지간임에도 빠른 19살 차, [[정세영]]과 정몽규 부자가 34살 차가 나다 보니 [[정몽필]]과 정몽규는 사촌형제 지간임에도 28살 차가 나고, [[정몽구]]의 장녀이자 정몽규의 당조카와 정몽규는 동갑이다.] [[용산고등학교]], [[고려대학교/학부/경영대학|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PPE]] [[석사]] 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1988년 현대자동차 [[대리(직위)|대리]]로 입사, 1991년 [[상무이사]]를 거쳐 입사한 지 8년만인 1996년 부친 [[정세영]]의 뒤를 이어 불과 34세[* IMF 이후에는 아무리 오너일가라도 주변 눈치 때문에 최소한 40살에 회장직에 오른다. 29살에 쌍용 회장직에 올랐다가 대차게 말아먹은 김석원의 사례 때문에. ]의 나이로 [[현대자동차]]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정세영 정몽규 기자회견.jpg|width=100%]]}}} || || 당시 [[정세영]]-정몽규 부자의 [[현대자동차]] 퇴진 [[기자 회견]]때의 모습.[* [[정세영]]은 애써 표정을 유지했지만 아들 정몽규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 [[1999년]] 3월 [[현대자동차]] 회장에서 물러나 [[HDC현대산업개발|현대산업개발]] 회장에 취임했다. 이는 [[정주영]] 명예 회장의 의중으로, 사실상 장자인 [[정몽구]]에게 [[현대자동차]]를 물려주기 위함이었다. 이에 30년간 [[현대자동차]]를 맡던 [[정세영]] 일가가 반발하자 [[현대자동차]]를 아예 빼앗은 후, 그 대신 [[현대산업개발]]로 바꿔준 것이다.[* [[정세영]] 문서 참조. 이후 정몽규의 한심한 경영 능력과 여러 실책이 부각되었고, 반대로 [[정몽구]]-[[정의선]] 부자의 탁월한 경영 능력과 여러 활약이 주목받으면서 [[현대자동차]]의 운명을 바꾼 분기점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본래 [[정주영]]의 목표는, '''[[정몽헌]]에게 차기 회장직([[현대그룹]]의 수장이자 범현대가의 수장)을 물려주고''' [[정몽구]]는 [[현대자동차]], [[정주영]]의 동생들에게는 소그룹들만 물려줄 예정이었다. [[정주영]]의 목표대로 훗날 [[정몽헌]]이 현대그룹 회장이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되'''긴''' 했지만]], 이미 [[정주영]] 시절 [[현대그룹]]의 대부분의 계열사를 [[정몽구]]가 가져가 버린 상태라서 더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후 [[정몽헌]]이 대북 송금 문제로 자살하고 [[정몽구]]가 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까지 인수하면서 범현대가의 수장은 명목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정몽구]]가 차지했다.] 그는 회사 경영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가, 당시 [[대우|대우그룹]]이 [[1997년 외환 위기|IMF 구제금융]]으로 재정난에 처해 명문 [[부산 아이파크/역사/대우 로얄즈|부산 대우 로얄즈]]를 매각하려 하자 인수전에 뛰어들어 거액을 배팅하여 [[롯데]], [[CJ]], 등을 따돌리고 2000년 2월 10일 축구단을 인수했다. 축구단을 인수하여 구단주에 취임한 정몽규는 인수 직후 부산 아이콘스로 개명했고, 팀 컬러를 파란색에서 정반대 색깔인 빨간색을 바꾸어 팬들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HDC]] 인수 이후 정몽규는 구단에 노력과 열정만 강요할 뿐 정작 [[구두쇠|지갑을 여는 데는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 정작 사내에서도 불만이 강했는데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로서 축구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 왔으며, 이후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겸직하며 장기 집권해 오면서, 정작 본업인 HDC의 회사 경영은 마치 자신이 뽑은 [[위르겐 클린스만]]처럼 부업 쯤으로 여기며 방치하고 있어서 사내외에 불만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수 영입에 매우 인색하여 스타 선수가 부재했고, 감독 영입 시 실력과 무관하게 단지 외국 명문 구단 출신이라는 이유로 덜컥 영입했으나 성적이 부진하였다. 결국 대우 시절 [[K리그]] 명문 구단이었던 축구단은 [[HDC]] 인수 이후 주로 중하위권을 전전하였다. 그러면서 인터뷰에서 "명문 구단은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다.", "부산에 스타 선수가 없다는 지적이 많은데, 유명 선수가 많아야 스타 구단인가? [[열정페이|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이 스타 선수들이다."는 둥 변명도 너무 뻔뻔하게 말하여 팬들로부터 큰 비난을 샀다. 축구단이 계속해서 하위권을 전전하자 정몽규는 축구단 경영에도 점차 흥미를 잃어갔다. 그러던 중 2013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취임하게 된다. [[대한축구협회]] 회장 취임 후 자신의 모교이자 [[대한민국 3대 연고주의 사조직]]으로 불리는 [[고려대학교/교우회|고려대학교 동문]]을 여러 논란에도 적극적으로 기용, 비호하는 아집을 보인다. 특히 [[고려대학교]] 선배인 [[조중연]] 전 회장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끈끈한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고려대학교]]가 자랑하는 축구 스타인 [[홍명보]]를 논란 속에서 무리하게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임했으나 결국 국가대표팀과 [[홍명보]] 감독의 지도자 경력에 큰 타격을 입는 파국적인 결과를 맞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도 홍명보가 국대 감독에서 물러난 후에 축협 전무로 다시 임명하였다. 다만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의 홍명보와 달리,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축구협회 전무로서의 [[홍명보]]는 [[김판곤]]과 함께 가삼현 이후 최고의 축구 행정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축협 회장 시절에도 불미스런 일이 터질 때마다 변함없이 책임 회피성 변명을 시전하며 본인을 제외한 아래 사람들에게 전부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를 반복하여 팬들로부터 숱한 비난을 받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에 부임한 이후 축협 일에만 재미가 들렸는지, 이후 부산 아이파크를 완전히 방치하다시피 해서 부산 아이파크 팬들의 원성을 듣고 있다. 결국 2015 시즌 과거 명문 구단이었던 부산 아이파크가 정몽규 본인이 도입한 승강제에 의해 2부로 강등 당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부산 팬은 물론이고 전 구단 팬들로부터 숱한 비난과 비웃음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나 "[[K리그]] 타 구단은 [[현대산업개발]]보다 5~20배는 큰 대기업"이라면서 "건설업계가 어려운 와중에도 축구에 대한 사명감으로 꾸준한 투자를 계속해 왔다."는 유체이탈식 변명을 둘러대며 팬들로부터 큰 비난을 샀다. 하지만 이후에도 정몽규는 축협 일에만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부산 아이파크를 방치, 2024년 현재도 부산 아이파크는 2부 리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0년 승격으로 1시즌 K리그1에서 보냈지만 하필 코로나 시국이라 관심도는 덜했다.] 2019년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나섰다. [[박삼구]]가 워낙 [[아시아나항공]]을 망쳐놔서 이미 부채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 다른 대기업들이 모두 손사래를 치고 있는 상황에서 [[HDC]]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니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2020년 정몽규 회장이 아시아나 인수 포기를 선언하면서 계약금 2,500억 원만 날렸으며 아시아나 인수 과정에서 HDC가 계약금과 소송 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해 차입금이 약 5,000억 원 늘어나 빚만 늘어나게 되어 또다시 본인의 무능한 괴담만 추가하였다. 게다가 계약금을 내지 않으려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그러나 이에 불복하고 또다시 부당이익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경제계에서 도덕성을 상실한 기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22년 1월 17일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사퇴했다. 그러나 사고 수습 및 후속 조치를 하지 않고 사퇴한 데다 여전히 ''''[[HDC]] 회장 자리를 유지'''한다는 비겁한 모습 때문에 도피성이냐며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