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읍시 (문단 편집) == 역사 == ||<-9> '''{{{#ffffff 정읍시의 행정구역 명칭 변화}}}''' || || '''백제''' || '''통일신라'''[br]757년[br](경덕왕16) || '''고려''' || '''조선 초기'''[br]1409년[br](태종9) || '''조선 중기'''[br]1589년[br](선조22) || '''조선 후기'''[br]1896년[br](고종33) || '''일제강점기''' || '''대한민국''' || '''대한민국'''[br]1995년[br]1월 1일 || ||<|2> 정촌현 ||<|2> 정읍현 ||<|2> 정읍현 [br] (고부 속현) ||<|2> 정읍현 [br] (독립된 현) ||<|2> 정읍현 [br] (독립 현) ||<|2> [[정읍군]] || 정읍군 || 정읍군 ||<|5> 정읍시 || || 정주읍 || [[정주시(전라북도)|정주시]] || || 고사부리군 || [[고부]]군 || 고부군 || 고부군 || 고부군 || 고부군 || || || || 대시산군 || 태산군 || 태산군 ||<|2> 태인현 ||<|2> 태인현 ||<|2> 태인군 || || || || 빈굴양 || 빈성 || 인의현 || || || 삼국시대 이전 [[마한]] [[구소국]]이 위치해 있었다고 하며, 백제 때에는 정촌현, 대시산군, 고사부리군의 3개 군이 설치되어 있었다. 신라 경덕왕 때 전국의 행정단위 명칭을 개정하면서 정촌현→정읍현으로, 고사부리군→고부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고려 시절에는 고부군이 중심이 되고 정읍현은 그 속현이 되었다. 조선시대 초에 태산현이 인근의 인의현과 통합되어 태인현이 되었다. 조선 초에 속현제도를 없애고 직촌화가 이루어지면서 정읍현은 독립된 현이 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기존의 감무 대신에 현감을 배치할 수 있게 제도가 변경되었다. 정읍현은 1589년(선조 22)에 고부군의 속현에서 벗어나 이순신이 정읍초대현감이라는 글이 많이 보이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1481년(성종 11)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이어 1530년(중종 25)에 전55권으로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정읍현 조에는 "관원: 현감, 훈도 각 1인이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무엇보다도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하면 이순신 이전의 정읍현감이 많이 확인된다는 사실이다. 조선 중기인 1589년(선조 22년)에 정읍 현감으로 이순신이 부임한다. 더군다나 이순신이 정읍현감으로 있던 시절에는 태인 현감이 공석이어서 이순신이 태인 현감 업무까지 겸직으로 다 처리했다.--아전들 갈려나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아전 한 놈이 게으름을 피우길래 잡아다 곤장을 쳤다-- 이순신이 승진하여 떠나갈 때 백성들이 훌륭한 사또를 데리고 간다며 승진반대 청원까지 냈다고 하며, 수령직을 겸직했던 태인현에서는 이순신을 승진시키는 대신 태인현감으로 전임시켜 달라는 청원까지 했다고 한다. 이순신은 약 1년간 정읍 현감을 역임하다가 진도군수, 가리포첨절제사 등을 거쳐서 1591년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로 떠난다. 이 중 중간의 벼슬들은 선조가 이순신을 승진시키기 위해 형식상 징검다리 식으로 임명한 것이어서 실질적으론 정읍 현감에서 곧바로 전라좌수사가 된 형태이다. 이후 행정구역의 개편없이 이어지다가 갑오개혁 이후 [[1896년]]에 행정구역 명칭이 정읍군으로 바뀐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4월 1일]] 태인군과 고부군이 정읍군으로 통합되면서 구 고부군 일부 지역이 [[부안군]]으로 편입되었다. [[1931년]] [[4월 1일]] 정읍면이 정주읍으로 승격되었다. [[1933년]] 용북면이 신태인면으로 개칭되고 1940년 11월 1일 신태인면이 신태인읍으로 승격되었다. [[파일:정읍시 CI(1995-2001).svg]] 과거 CI. [[1981년]] [[7월 1일]]에 정주읍이 [[정주시(전라북도)|정주시]]로 승격되어 [[정읍군]]과 분리되었고 [[1983년]] [[2월 15일]] 내장면 전역과 소성면 일부, 덕천면 망제리, 북면 일부가 정주시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전국 [[도농통합시|도농통합]] 정책에 따라 정주시와 정읍군이 다시 합쳐져 현재의 정읍시가 된다. 여기서 '정주(井州)'라는 이름은 정읍면이 읍으로 승격될 때, 그대로 '정읍읍'이 되면 [[읍읍|'읍(邑)'자가 중복되어 발음상 불편하다 하여]] 지명에 흔히 쓰이는 글자 중 하나인 고을 주(州)자를 써서 '정주읍'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이것이 훗날 정주읍이 시로 승격될 때도 그대로 시 명칭으로 이어져 '정주시'가 되었다가 [[1995년]] 정읍군과 [[도농복합시|통합]]하면서 원래의 명칭인 '정읍'시로 돌아갔다. 상당히 오랜기간 정주로 불렸기 때문에 아직도 정주라 해도 대부분 알아듣고, 아직도 정주가 정식명칭인지 아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참고로 이름이 정주였던 시절에는 같은 전라북도 소속에 발음도 비슷한 '[[전주시|전주]](全州)'를 '정주'와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사한 예로 [[충청북도]] [[청원군]](현 [[청주시]] 읍면지역)과 [[충청남도]] [[천원군]](현 [[천안시]] 읍면지역)이 있었다. 이들은 관할 도는 달랐지만, 대신 행정구역 경계를 직접 맞대고 있었다.] --[[정읍역|정주]]가는 기차표를 달라고 했는데 [[전주역|전주]]가는 기차표를 줬다고 하더라-- --[[평안북도|윗쪽]]에도 [[정주시]]가 있다...-- 그래서 당시에는 정주에 대해 말할 때 '전주에서 [[광주광역시|광주]] 쪽으로 더 내려가서 있는 곳', '[[내장산]] 있는 곳' 등의 수식어를 붙여 전주와 구별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가사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백제 가요인 '[[정읍사]]'로도 유명하다. 고등학교 문학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수능에도 자주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