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종(조선) (문단 편집) == 대중매체 == 재위 기간도 길지 않고 실권도 거의 없던 [[꼭두각시]] [[조선/왕사|국왕]]이기 때문에 대중매체에서는 그동안 유약한 모습으로만 주로 그려져 왔었고 비중도 낮았으나, [[2010년대]]부터는 [[태조(조선)|아버지]]의 무인적인 면모를 가장 닮은 [[무장]] 출신 [[아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증]]에 맞게 강인한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고 있는 상황이고, 또한 비중도 옛날 작품들에 비하면 많이 늘어났다. 여기에 아랫사람들을 최대한 챙겨주는 후덕한 성품이라, 능력도 인품도 없이 꿈만 커서 여러 사람 심란하게 만든데다 인격마저 [[개차반#s-1|개차반]]이었던 [[회안대군|이방간]]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이방원 같은 비전도 없었고[* 이는 정종이 아버지 [[태조(조선)|태조]]를 따라다니던 부관형 인물인 데다가 국가의 운영과 관련되는 문관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아버지 [[태조(조선)|태조]]는 카리스마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정도전]]이라는 희대의 능력자를 참모로 들여 국가의 기틀을 설계할 정도의 배포나 능력은 있었다.] [[조선/왕실|왕실]]과 [[조선|국가]]를 위해서라면 [[살인]]도 불사하는 냉혹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권력]]에 대한 욕망이 전혀 없어 군주에 적합한 인물은 확실히 아니었다. * 1983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1부 추동궁 마마에서는 배우 [[이영후]][*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남은]] 역.]가 연기했다. *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배우 [[태민영]][* 1954년 출생. 1992년 개봉한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영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는 성인 한병태 역, 2000년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신강]] 역을 맡다가 [[간암]]으로 중도 하차하고 당해 가을에 숨졌다.]이 연기했다. [[역사]]상의 소탈하고 호방한 무인의 모습은 없고[* 기록에 나왔지만 [[허수아비]]라고는 해도 [[공양왕]]에게 직접적으로 압박 발언까지 할 정도의 패기가 있었다.] 극 초반의 [[위화도 회군]] 때 형제들 중 [[군대]]에 장수로서 종군하는 장면이 나와 나와 무인 출신임을 보이기는 했다.[* 작중에서 처음으로 [[태종(조선)|이방원]]과 [[태조(조선)|이성계]]가 대면했을 때가 [[위화도 회군|회군]] 후 포위 대치 중이었는데, [[태조(조선)|아버지]]를 도우러 찾아온 [[태종(조선)|방원]]의 행동에 [[태조(조선)|이성계]]는 '''"네 형 방과가 있는데 뭣하러?"'''라며 오히려 무모하게 온 [[이방원]]을 꾸짖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방과의 군사적 능력만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전쟁]]에서 몇 번 승리한 다음에는 아우들의 야심과 거친 행동에 [[전전긍긍]]하는 나약한 모습으로 나온다.[* 신덕왕후는 이에 대해서 우유부단하다고 대놓고 무시했으며 다른 인물들도 [[정치]]적 인사 등에 대해서는 정종을 무시하는 이들이 몇 있다.] 형에 대한 우애도 적지 않아서 [[진안대군|이방우]]에 대해서는 [[진안대군|이방우]]에게도 자주 가서 말을 걸며 [[조선]] [[건국]] 이후에도 그에게 같이 갈 것을 부탁할만큼 아꼈지만 형이 너무 [[충신]]인지라 되려 정종에게 성질을 부리기도 하였다. [[제1차 왕자의 난|무인정사]] 당시 [[이성계(용의 눈물)|이성계]]의 쾌유를 빌려고 불공을 드리고 있던 <[[조선왕조실록]]>과 달리 본작에서는 [[대궐]]의 소식을 듣고 [[양주시|양주]]로 몸을 피해서 전전긍긍했고[* 이는 뜻하지 않게 [[제1차 왕자의 난]]이 성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당초 [[정도전(용의 눈물)|정도전]] 일파는 [[신의왕후]] 소생 대군들을 모두 [[궁]]으로 불러들여 몰래 죽일 계획을 짰었는데 이방과가 오지 않아 거사 실행이 지연되어 [[태종(조선)|이방원]]이 낌새를 채고 난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방원(용의 눈물)|이방원]]에 의해 억지로 [[조선/역대 왕세자|세자]]가 된 후 [[태조(조선)|이성계]]를 배알하러 갔을 때도 [[의안대군(이방석)|세자]]가 [[살해]]당한 판국에 [[조선/역대 왕세자|세자]]랍시고 나타난 것에 대노한 [[태조(조선)|이성계]]도 "네놈은 성정이 물러터져서 [[태종(조선)|방원이 놈]]이 시키는대로 했을거다"라며 핀잔을 하는 것으로 끝냈다. 효심이 깊고 형제들을 아끼는 면은 많이 표현되었는데[* 심지어 방탕하고 거만한 이복동생들([[신덕왕후(용의 눈물)|신덕왕후]] 소생의 [[의안대군(이방석)|이방석]]과 [[무안대군|이방번]])까지 딱히 미워하지 않았기에 [[제1차 왕자의 난]] 때 죽어버린 이복동생 [[의안대군(이방석)|이방석]]의 [[시신]]을 보고 "굳이 죽였어야 했냐"며 슬퍼하고 [[태종(조선)|이방원]]이 [[이방번]]과 [[이제(조선)|흥안군 이제]]를 살려주려고 하자 참 잘했다고 칭찬한다. [[회안대군|이방간]]이 "화근을 잘라버려야 한다"고 칼을 들고 쫓아가자 발을 동동 구르면서 말려보려 하지만 [[태종(조선)|이방원]]이 "좋은게 좋은거"라고 1번 말려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리면서 실패.] 이를테면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신의왕후]]의 아들들이라면 [[극혐]]하던 [[태조(조선)|이성계]]도 정종은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처음에는 그래도 미워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덜 미운 아들인지라 밤중에 불러서 "[[태종(조선)|방원이]]를 죽이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나머지는 자신이 다 알아서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설득하지만 아버지만큼 동생도 [[사랑]]하던 형인지라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거부하면서 도망치기도 했다.] [[상왕]]이 된 아버지 [[태조(조선)|이성계]]를 자주 찾아가는 모습들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아버지와 형에 대한 지극한 마음을 가진만큼 동생들도 많이 아끼는데, 특히 [[제2차 왕자의 난]] 이후에는 [[조선/왕사|임금]]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근신하고 있던 [[회안대군|이방간]]을 찾아가 [[태종(조선)|이방원]]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설득하는데 듣지 않자 눈물을 흘리며 지금까지 "회안 아우"라고 부르던 태도를 싹 바꾸어 "[[회안대군|방간]]아! 그 놈의 전하 소리 좀 집어치워라![* [[회안대군|방간]]이라고 부르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전하라고 말하는 아우의 모습에서 더욱이 울분에 찬 듯한 [[목소리]]로 동생을 꾸짖는 것이 크게 느껴질 정도. 노함과 슬픔을 가지고 동생을 껴안으며 우는 장면 역시 [[명장면]] 중 하나.] 왕으로서 명령하는 게 아니라 형으로서 설득하는 거다. 제발 빌고 살아라!"라고 청하자 결국 [[회안대군]] 역시 마음을 바꿔[* 그러나 정작 [[태종(조선)|이방원]] 앞에서는 "끝까지 구차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는데 결국 목숨은 부지했지만 말이다.] 살게 하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극 중 정종이 화내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는데 친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회안대군|이방간]]을 분노로 다그치는 모습이 정말 애절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건 태종과의 관계, 난이 끝난 이후에 신하들이 정종을 하여금 왕위를 넘기라고 닥달할 때는 지금껏 넘기겠다는 의지를 보이던 것과는 반대로 뜸을 들이는데, 그 연유도 자신의 동생인 방원이 백성들에게 동생들을 죽이고 형을 내쫓고 둘째 형에게까지 강제로 왕위를 내놔라고 하는 것처럼 보여 동생이 괴로울까봐[* 이방원 또한 마찬가지로 자신의 형을 닥달한 신하들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형에게 어떻게 우려를 불식시킬까 걱정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자신의 양자로 들이고 자신이 양위하는 모양새를 다 준비하고 난 다음에 바로 [[사냥]] 자리를 마련해 [[조선/역대 왕세자|왕세자]]였던 [[태종(조선)|이방원]]과 함께 [[사냥]]을 나서는데 사냥지에서 야영하고 [[태종(조선)|이방원]]과 술잔을 나누며 [[조선/왕사|왕위]]를 물려줄 것이라 선언한다. 그러자 그 때까지 모처럼 훈훈한 형제의 정을 느끼며 즐거워하던 [[태종(조선)|이방원]]은 깜짝 놀라며 만류하지만 정종은 "이것은 내가 [[왕]]으로서 내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어명이니 이것만은 막지 마시게"라고 하여 [[태종(조선)|이방원]]마저 뭐라 대꾸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이는 이성계에게 인정받고 형과 함께 사냥을 하며 우애가 돈독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지만, 그 마음을 알던 정종은 방원이 어떻게 하던 백성은 방원을 두려워 할 것이고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을테니 내가 내리는 왕명으로서 그 왕위를 받아라라고 방원의 입을 막는데, 이후에 그 과정 단계를 들은 이방원은 물론이고 원경왕후도 그런 강단이 있었나하며 놀랄 정도.] 이후에 [[사냥]]에서 돌아온 정종은 지금까지의 유약한 모습과는 다르게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여[* 이는 아버지 [[태조(조선)|이성계]]가 [[한양도성|도성]]을 떠나 있어 반대할 겨를이 없는 사이 재빨리 일을 끝내버리기 위함이었기도 하다. 실제로 이방원이 즉위한다는 말을 들은 이성계는 황급히 돌아가려고 했지만, 이미 즉위식이 끝나고도 남을 [[거리]]인지라 결국 포기하고 이후 [[조사의의 난]]이 끝날 때까지 아예 [[한양도성|도성]]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태종(조선)|이방원]]을 등극시키고 [[상왕]]으로 물러나 버린다. [[태조(조선)|이성계]]가 [[조사의의 난]] 이후 환궁할 때는 "그렇게 강경하던 아버님이 갑자기 그러는 게 이상하다."며 미심찍어했고[* 극 중 [[태종(조선)|이방원]]은 친혈육에 대한 정이 남달라서 이들과 관련된 일에서는 평소의 [[태종(조선)|이방원]]이라고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느슨해지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이 때도 [[하륜]]과 [[원경왕후(용의 눈물)|원경왕후]]가 "[[태조(조선)|태상왕 전하]]께서 그렇게 쉽게 마음을 바꿀리가 없다. [[태조(조선)|태상왕]]께는 백우전이 있다"며 경고했지만 전혀 듣지 않았다.] [[태종(조선)|태종]]이 [[왕세자]]가 되자 [[야사(역사)|야사]]대로 자신의 아이들을 모두 [[승려]]로 출가시켰다가 [[태종(조선)|태종]]이 허락한 이후에야 다시 [[환속]]시킨다. [[태종(조선)|태종]]이 [[여흥 민씨|민씨]] [[민무구|형]][[민무질|제]]를 노리고 [[양위]] 파동을 일으켰을 때도 뭔가 다른 뜻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생각하다 [[여흥 민씨|민씨]] [[민무구|형]][[민무질|제]]가 꾸중들은 이야기를 듣고 바로 상황을 파악한다. 이후로는 [[정안왕후]]와 함께 [[전국]]의 명소를 유람하거나[* 실제로 [[정안왕후]]와 담소를 나누며 경치좋은 곳을 느긋하게 거니는 장면이 몇 번 스쳐지나간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와있지만 [[상왕]]으로 물러난 정종은 정말 속 편하게 놀러다녔으며 [[조선/왕사|왕위]]에 오른 후 일에 치이고 살던 [[태종(조선)|태종]]은 "형님이 부럽다."고 직접 언급하기까지 했다.] 아버지인 [[태조(조선)|태상왕 이성계]]를 찾아뵈며[* [[태조(조선)|이성계]]도 죽기 전에 정종을 찾을 정도.] 유유자적하게 지낸다는 설정으로 한동안 짧게만 등장하다가 [[정안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조카 [[세종(조선)|세종]]이 즉위하고 1년 후 본인도 세상을 떠나는 장면을 끝으로 퇴장한다. * 2008년 [[KBS]]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배우 [[노영국]][* 1994년 [[KBS]] 드라마 <[[한명회(드라마)|한명회]]>에서는 [[안평대군]] 역, 2002년 [[KBS]] 드라마 <[[제국의 아침]]>에서는 [[혜종(고려)|혜종]], 2021년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드라마)|태종 이방원]]>에서는 [[조준(조선)|조준]] 역.]이 연기했다. 초반부에 잠깐 등장하는데, [[정치]]적 실권은 물론 없지만 [[태종(조선)|태종]]과 맞먹는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태종(조선)|태종]]조차 형의 위치를 부담스럽게 여겨서 정종이 연 잔치에 참석하기 전 "툭하면 잔치를 여는 것도 모자라서 귀한 [[명나라]] [[활]]을 대군들에게 하사하지를 않나, 상왕전 재미값으로 들어가는 [[백성]]들 혈세는 어쩌란 말인가?"라고 투덜거리다가 측근 상선 노희봉이 "[[권력|다른 재미]]를 찾는 것보다는 낫습니다."라고 충고하자 "그렇겠지. [[인덕궁]](정종의 거처)이 [[2차 왕자의 난|회안 형님의 흉내]]를 냈다가는 그 몇 십 배의 재물이 들어가고 아까운 목숨도 숱하게 죽어나가겠지."라고 받아들일 지경. 기존의 유약한 [[이미지]]에서는 벗어난 편이지만 오히려 [[고증]] [[왜곡]]이 심하다. [[양녕대군]]의 비행으로 [[효령대군]]을 [[조선/왕사|왕위]]에 올리려는 정치적 야심도 가지고 있었다고 묘사된다. 양녕의 비행을 숨기려는 충녕대군에게 "이 일이 너에게 이익이 될 수도 있을텐데 왜 겁을 먹느냐? 네가 장자가 아니라서? 지금의 군왕도 내 아우였느니라."라고 지적할 정도. * 2014년 [[KBS]] 드라마 <[[정도전(드라마)|정도전]]>에서는 [[황산대첩]]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 후 [[무인]]의 역할로 간간히 등장하였다. [[조선/왕사|왕위]]에 관심없는 게 표현되면서도 나약한 정종이라는 [[클리셰]]를 벗어났다. 자세한 내용은 [[이방과(정도전)|문서]] 참조. 참고로 배우는 이태림. * 2015년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배우 [[서동원]]이 연기했다. [[정도전(드라마)|정도전]]에서처럼 [[조선/왕사|왕위]]엔 큰 관심이 없지만 정치에 어느정도 식견이 있고 무관으로써 여러번 등장하며, 가족들을 잘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가상인물들이 워낙 무협지스러운 활약을 보여주는지라 정작 실제역사에서 무관으로서 굵직굵직한 활약을 해온 이방과의 무력은 평범한 수준으로만 연출된다. 그래도 [[위화도 회군]] 당시 [[우왕]]과 [[최영]] 측에 의해 [[인질]]로 잡혔다 형인 [[진안대군|이방우]]와 함께 [[참수|처형]]당할 뻔 하다 검을 빼았고 [[무휼]], [[진안대군|이방우]]와 같이 병사들을 상대로 무쌍을 찍으며 체면치레는 했다. * 2019년 [[JTBC]] 드라마 <[[나의 나라]]>에서는 배우 김서원[* 영화 <[[부당거래]]>에서 류승범이 분한 주양검사 사무실에 앉아있던 남자 사법연수생을 연기한 배우.]이 연기했다. * 2021년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드라마)|태종 이방원]]>에서는 배우 [[김명수(배우)|김명수]]가 연기했다. [[이지란(태종 이방원)|이지란]], [[조영규]], [[이방간(태종 이방원)|이방간]] 등을 이끌고 앞장서서 돌격하는 모습으로 보아 작중 내내 [[무인]]으로서의 면모와 [[이방원(태종 이방원)|이방원]]의 가장 큰 지지자 역할을 부각시켰다. 아버지 [[이성계(태종 이방원)|이성계]]에게 불만을 터트리는 [[회안대군|이방간]]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칼질 일보 직전까지 가는 면모를 보여주는 한편, 정치적 목적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 이상으로 가문과 가족간의 화목함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는 효심과 형제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아내인 [[정안왕후(태종 이방원)|정안왕후]] 또한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모습으로 묘사하여 실제 역사 속 정종에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를 해줬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이방과(태종 이방원)|문서]]를 참조. * [[네이버]] 웹소설 <[[연못에 핀 목화 - 송경별곡]]>에서는 주연 중 1명으로 등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방과(송경별곡)]] 문서를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