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종(조선) (문단 편집) == 가족 관계 == 후일 [[정안왕후|정안왕후 김씨]]가 먼저 [[사망]]하자 동생인 [[태종(조선)|태종]]이 그를 위로하는 잔치를 열었는데, 잔치가 한창 무르익던 도중 갑자기 [[애처가|먼저 간 아내가 떠올라 혼자 즐기지 못하겠다고 잔치를 파하고 돌아간 일화]]에서 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태종실록]]》 24권, 태종 12년([[1412년]], 명 영락(永樂) 10년) 8월 15일 (정묘)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ca_11208015_002|상왕을 받들고 본궁 수각에서 술자리를 마련하다]].] 허나 [[정안왕후]]와의 [[성관계|금슬]]과는 별개로 무려 7명의 [[첩]]에 '''15남 8녀'''를 두어 자녀가 상당히 많았다. 이들은 대체로 행실이 엉망이라 이후 [[세종(조선)|세종대왕]] 시대에 [[조선/왕실|왕실]]의 체면을 떨어뜨리는 골칫거리가 된다. 정종의 10남이자 성빈 지씨와의 사이에서 둔 장남 [[덕천군]]만은 별 문제 없이 살았고 자손을 많이 둬 번성했다. 정종의 12남이자 성빈 지씨와의 차남 [[도평군]]은 비행을 저질러 악명이 높았지만 66세의 천수를 누리고 역시 많은 자손을 둔다. 정종의 [[첩]] 중 기매라는 이름의 [[기생]] 출신이 있었는데, 바람기가 대단해서 많은 남자들과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아들]]도 낳았지만 아버지가 의심스러워서 정종은 기매가 낳은 [[아들]]을 정식 아들로 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아이]]를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정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후 기매가 가짜 내시와 바람을 피운 것이 들통이 났는데, 원칙대로라면 이는 [[참수|처형]]감. [[태종(조선)|태종]]과 중신들은 가짜 내시와 기매를 처형하려 했으나, 정종은 직접 [[태종(조선)|태종]]에게 선처를 부탁하여 기매를 살려주었다.[* 가짜 내시는 처형당한다.] 기매는 끝까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정종의 아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종은 인정하지 않고, 대신 죽을 때까지 기매 모자를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정종 사후 기매의 아들은 '지운'이라는 법명으로 출가했지만, [[승려]]의 모습으로 [[왕자]] 대접을 받고 돌아다니며 권세를 누렸는데, [[조선/왕실|왕족]] [[사칭|사칭죄]]로 크게 문제가 되었다. 당시 [[상왕]]이 된 [[태종(조선)|태종]]과 [[조선/왕사|국왕]] [[세종(조선)|세종대왕]]은 일단 지운을 체포했는데, [[태종(조선)|태종]]과 [[세종(조선)|세종]]은 지운이 정종이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심증적으로는 정종의 아들이 맞는다고 생각했는지, 지운에게 '[[조선/왕실|왕족]]에 준하는 의식을 공급할 테니, 절대 [[왕자]]라는 소리를 입 밖에 하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지운은 이 명을 듣지 않고 계속 문제 행동을 일삼다가 결국 [[1424년]](세종 6년)에 [[참수]]되고 만다.[* '''《[[세종실록]]》 23권, 세종 6년([[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1월 25일 (임인) 6번째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0601025_006|#]].] 바로 아래에 설명했듯이 '[[원자(왕족)|원자]]'로 불렸다는 [[불노]](佛奴)는 실록에 정종의 친아들이 아니라 [[첩]] 유씨가 다른 사람에게서 낳은 아들이라고 기록됐다. [[불노]]도 지운처럼 자기가 [[상왕]](정종)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종은 결코 내 아들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불노]]는 계속 정종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다가 [[공주시|공주]]에 [[유배]]하여 안치하게 했다.[* '''《[[태종실록]]》18권, 태종 9년([[1409년]], 명 영락(永樂) 7년) 10월 27일 (을축) 3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ca_10910027_003|#]] ] 그 외에 서자로 5남 [[선성군]]이 있는데, 첫째 부인이 바로 [[정몽주]]의 손녀인 오천군부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