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지용 (문단 편집) == 여담 == * 군사정권 시절 그에 대해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금기'의 대상 자체였다. [[전두환 정부]] 때인 [[1987년]], 정보당국에 고용된 한민성(韓民聲)이라는 사람이 『[[http://www.riss.kr/link?id=M2132084|(追跡)鄭芝溶 : 고오노 에이지氏에게 警告한다]](추적 정지용 : 고노 에이지씨에게 경고한다)』(서울: 갑자문화사, 1987)라는 [[단행본]]을 펴냈는데, 이 책은 저자가 실존인물인지 자체가 불명이다. 책의 구성을 보면 정지용에 대해 어떤 정치적 이미지를 고정하려는 목적으로 다른 잡다한 언설로 시종일관하고 있어, 사실에 관한 논의를 '마녀사냥'식 사상논쟁으로 몰고가려는 의도가 아주 강한 내용이다.[[http://www.bookhunter.co.kr/shop/shopdetail.html?brandcode=040005000099&search=&sort=price2|#]] 모 월간지에선 정지용의 자진월북설을 제기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 기사에 의하면 정지용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었는데 [[모윤숙]]('렌의 애가'로 유명, [[친일인명사전]]에 실림)이 정지용의 행방을 거제도에서 필사적으로 찾았지만 정지용이 자신의 신분을 끝까지 감추고 북한행을 선택했다는 것. 그러나 이 기사는 정지용의 유족들이나 지인들에 의해서 터무니없다는 소리만 들었다. *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향수>, <[[유리창]]> 등이 있다. <향수>의 경우 가곡으로도 나왔기 때문에 이쪽으로 알 사람도 꽤 될듯. 가곡 <향수>의 인트로는 90년대 모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보릿고개]]시대를 소재로 한 코너의 삽입음으로도 쓰였다. * 노태우 정부 시절 전까지는 친북인사로 규정되는 바람에 시가 교과서에 실리지 못했다고 한다. 전두환 정부 시절까지는 정지용 시인이라는 인물 자체가 [[대한민국 정부]] 공인의 '''친북 성향 문인'''으로 낙인되어서 그의 시작(詩作) 대부분이 모두 '''금서목록'''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인데 당시 서점 및 출판계에서도 정지용 시인에 대한 시집을 출간할 수 없었고 당시 정지용 시인의 시집을 출간할 경우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출판계 어느 곳도 정지용 시인의 시집에 대한 출간이나 출판을 꺼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득이 이를 출간해도 통일원(현재의 대한민국 통일부) 및 통일원 장관의 특별 허가가 내려져야 출간이 가능하겠지만 시기가 그런지라 이 역시 쉽지 않았다. 본래 출판 관련은 현재의 [[문화체육관광부]]의 소관이지만 정지용 시인의 시집들은 당시 기준으로 정부 공인 금서목록으로 지정되었고 또한 친북 인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당시 통일원의 특별 허가가 있어야만 출간이 가능하였다. 다만 단순 열람이나 상업 판매보다는 대부분 학술 및 연구 목적으로만 허가가 가능하였다. 납북으로 인정되어 해금된 1988년부터는 이같은 절차가 폐지되어서 문화체육관광부의 고유 소관하에 정지용 시인의 시집의 출간이 허가되었다. 1988년에 정지용 시인 시작들이 금서목록에서 해금되면서 이 때부터 출판계에서 본격적으로 정지용 시인의 시집이 뒤늦게 출간되었다. 그래서 나이 든 사람들 중에는 늘 정X용으로 표현되던 정지용의 시가 수능 시험 등에 출제되는 것을 매우 신기하게 여기는 경우도 많다. * 정지용 시에 가락을 붙여 만들었던 노래들이 금지곡 지정을 면하고자 가사를 바꾸게 되는 일도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노래가 채동선의 고향. 박화목이 개사한 망향, 이은상이 개사한 그리워로도 알려져 있다. * 정지용의 새 작품이 발굴됐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2D&sid1=103&sid2=243&oid=028&aid=0002240779|관련기사1]], [[http://m.news.naver.com/read.nhn?oid=028&aid=0002240778&sid1=103&mode=LSD&fromRelation=1|관련기사2]] * 출생지인 [[옥천군]]에서는 정지용 시인을 기념하는 [[http://www.okcc.or.kr/html/kr/event/event_03.html|지용제]]가 매년 개최하고 지용제 중에 지용문학상도 진행된다. 생가도 있는데, 가보면 동명이인 정지용의 싸인을 많이 볼 수 있다. [[옥천역]]에 그의 시비가 있다.[[https://guestbook.blog.naver.com/ianhan/222005303829|#]] * 일본 [[교토]]에 위치한 [[도시샤대학]]은 그가 나온 학교이며, 마찬가지로 동 대학을 나온 [[윤동주]] 시인과[* 윤동주 시인의 경우 도시샤대학 외에도 연세대 등을 나왔다.] 함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인물을 일본에서 기념하고 있는게 아이러니하기도 하나, 그 특이함 때문인지 교토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간간히 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eong_Ji-yong_stele.jpg|width=100%]]}}} || || {{{#fff '''도시샤대학에 있는 정지용 시인의 시비'''}}}[* 시비에 새겨진 시는 [[압천]]으로 한국어와 일본어로 쓰여 있다.] || * [[파일:attachment/정지용/example.jpg|width=400]] [[부천시]] 소사본동에 3년동안 살았던 은거지 터가 있으나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이 사실을 아는 부천 시민은 적다.[[http://map.daum.net/?panoid=1034707744&pan=163.0&tilt=-6.2&zoom=-1&map_type=TYPE_MAP&map_attribute=ROADVIEW&urlX=453645&urlY=1106449&urlLevel=3|로드뷰]]. 그나마 2020년대 와서 이 곳앞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 [[이준익]] 감독의 2016년 영화 [[동주(영화)|동주]]에서는 [[문성근]]이 정지용의 역할을 분했다. * 구글 메인페이지에 탄생 117주년 기념일 로고가 걸렸었다.(2019년 6월 17일)[[https://www.google.com/doodles/jeong-ji-yongs-117th-birthday|#]]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