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치범수용소/북한 (문단 편집) == 난쟁이 수용소 == [[1970년대]]에는 [[난쟁이]] 수용소를 만들어서 키가 특별히 작은 사람들을 잡아넣고 씨를 말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함경남도]] [[정평군]]과 [[함경남도]] [[영광군]], [[양강도]] [[후창군]] 그리고 [[함경북도]] [[종성군]], [[자강도]] 산골에 위치한 난쟁이 수용소에 잡아넣고 씨를 말렸다고. 더구나 [[북한]]은 이곳에 잡혀온 난쟁이들이 2세를 낳을 수 없도록 생육 기능을 마비시키는 주사를 놓아서 강제로 피임을 시켰다고 한다. 지금은 수용소에서 농사를 지으며 일하던 난쟁이들이 후손도 낳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려 '난쟁이 수용소'도 사라졌다는 게 [[탈북자]]의 증언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난쟁이들이 종자를 퍼뜨리면 안 되기 때문에 한 곳에 모아두라"'''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 근데 웃긴건 김일성의 아들인 [[김정일]]은 키가 [[단신|162cm]]로 [[내로남불|난쟁이다.]]] 1960~1970년대부터 [[평양시]]를 [[국제도시]]로 꾸민다는 이유로 평양에 거주하던 장애인들을 각 지방의 연고지에 따라 강제로 이주시켰다. 그 이유는 ''''공화국의 수도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며 그 외에 외국인들의 출입이 잦은 다른 대도시에서도 장애인들을 격리, 다른 곳에 수용한다. 평양이 '''장애인 없는 도시'''로 완벽하게 탈바꿈한 것은 [[1980년대]] 후반. [[1989년]] 제13차 평양시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맞아 1985~[[1986년]] 사이에 남아 있던 모든 장애인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지방에 연고지가 있는 장애인은 부모형제와 강제로 헤어져야 했다. 지방에 친척이 없는 경우엔 부모도 함께 추방됐고, 간혹 평양시에 남는 경우라도 평양시의 외곽 지역에 거주하며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은둔 생활을 강요당했다.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2500&num=4427|북한 난쟁이 수용소 1]]. 지난 [[2006년]] UN에서도 북한이 장애인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한다는 보고가 나왔었다. 당시 UN 북한인권특별조사관인 비티 문타몬은 '''"평양 당국이 장애인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며 심신 장애 정도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면서 '''"북한은 심신장애인들을 [[T-4 프로그램|'49병동'으로 불리는 수용소로 보내고 있으며]], 난쟁이들을 위한 다른 수용소들도 있다."'''고 밝혔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21/2011022101140.html|북한 난쟁이 수용소 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