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치장교 (문단 편집) === 전근대 중국 === 공산국가식 총정치국의 원형이라고 할 수있는 감군을 운영했다. 사실 이념을 떠나면 정치장교의 원조는 다름아닌 중국이다. 중국은 예로부터 영토가 워낙 넓어서 군현제를 도입하고도 지방행정에 빈틈이 많아서 민간의 사적인 무력 보유를 완전히 막을 수가 없었다. 사실 무협지에 나오는 무림 혈투의 유구한 역사적 근거인 [[계투]]는 중국 공산당도 막지 못하고 있을 정도. 그리고 장군들과 전방 관군들 사이의 꽌시와 반란기도의 위험은 항상 불거지는 문제였고, 군대가 역성혁명을 주도한 사례가 많아 황제가 군대를 신뢰하기가 극히 어려운 시스템이어서 황제가 그나마 운명공동체라고 할만한 태감 환관들에게 감찰권한을 주어 장군들을 통제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감군이다. 물론 감군들은 군사와 전쟁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으므로 시대를 앞서 초창기 정치장교 제도의 폐단을 그대로 족족 보여주었으며 전쟁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황명의 수행을 빙자해 정상적인 작전을 방해하니 도움이 될리가 없다. 특히 전시상황에서 안그래도 힘든 전황을 더 악화시켜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가 하면 오히려 잘싸운 장수들을 모함하여 패전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감군에게 모함당하면 유능한 장수일수록 살아남을 확률이 낮았으므로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처신을 매우 지혜롭게 한 곽자의 정도고 보통은 고선지처럼 억울하게 처형당하기 일쑤라 오히려 복고회은처럼 목숨을 건지려고 반란을 일으켜버리기도 하였다. 감군 중에서 명나라 초기의 환관 왕진은 중앙군 전력을 모조리 말아먹고 장군들 전원을 전사시키며 황제를 이민족에게 포로로 잡히게 하는 대삽질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황제를 수행한 병부상서까지 전사하는 바람에 빡친 근위대 장군 번충에게 철퇴를 맞아 죽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