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치장교 (문단 편집) === [[대숙청]]의 희생양 === 정치장교는 대숙청을 실행한 내무인민위원부(NKVD) 소속이 아니라 공산당소속으로 국방인민위원부 산하의 붉은 군대에 파견된 처지였다. 이 때문에 "사상이 불건전한 트로츠키파를 숙청하려는" NKVD의 사냥감이 되기 딱 알맞았고, 실제로 대숙청에 일반장교보다 더 많이 희생되었다. 스탈린은 [[적백내전]] 당시 정치장교로 근무하기는 했지만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당시 패전 책임을 뒤집어쓰고 트로츠키가 국방장관으로 있던 군에서 거의 [[불명예 전역]]을 했기에 군 정치부와는 거의 무관하다. 오히려 군 정치부는 창설자 트로츠키의 추종자들의 온상이었으며, 트로츠키가 실각할 때도 일부 정치장교들이 반 스탈린 [[쿠데타]]를 일으켜 스탈린 파를 몰아내자고 제의할 정도였다. 숙청을 실행한 조직은 사법권과 수사권을 가졌던 [[NKVD]](내무인민위원부)였다. NKVD는 정규 붉은 군대와는 별개 조직이었으나[* 붉은 군대는 내무인민위원부가 아니라 국방인민위원부 관할이기 때문에 상급부서가 다르다.] 군을 덮칠 수 있었던 이유는 NKVD 휘하의 [[내무군]]이 [[군사경찰]]이 없던 소련군의 군사경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일단 소련의 대숙청은 193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음에도 군은 상당히 오랫동안 숙청으로부터 자유로웠다. NKVD는 민간에서 광범위하게 반스탈린 및 친트로츠키파를 숙청하다가, 사냥감이 보이지 않자 한동안 무풍지대에 있었지만 트로츠키가 창설했던 군 정치부, 즉 군내 정치장교 조직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군 숙청 초기에는 주로 전현직 고위 정치장교들부터 체포되었다. 이것이 군 전체에 확산되어서 정치장교나 일반 장교 가릴 것 없이 군에 대한 광범위한 숙청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일반장교보다는 정치장교에 대한 숙청이 더 심했다. 예를 들어 당시 15명의 야전군(army) 사령관중 13명이 처형된 데 반해 군 정치장교는 16명 전원이 처형되었으며, 군단급의 경우 군단장 57명중 50명인데 반해, 군단 정치장교는 28명중 25명인 식이었다. 실제로 대숙청 당시 가장 혹독하게 숙청된 자들이 바로 트로츠키가 심어놓은 고급 정치장교들이었다. 물론 정치장교뿐 아니라 일반 장교도 많이 죽였으므로 대숙청이 해악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대숙청은 일반 장교-정치장교와의 갈등과는 상관없다. NKVD는 소련 정부에 소속되어 있으며, 군 정치부는 군에 소속된 당조직이므로 다른 조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