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치장교 (문단 편집) === [[정훈교육]] === 정치장교가 벌인 각종 삽질에 비하면 의외겠지만, 정치장교 제도는 군사적인 면에서는 방해만 되는 반면에 [[공보정훈장교]]로서는 우수했다. 이들은 원래 인민들을 사상 무장시키고 혁명정신을 고취하는게 일인 당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예 현대적인 [[정훈교육]]의 시작을 이들의 사상무장 사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을 정도다. 이는 '병사 개개인'에게 아군의 정치 체제가 적군의 정치 체제보다 확고하게 우위에 있으며, 자신들은 [[정의]]를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비록 정의를 위한 신념과 전투의 결과는 별개인 만큼 이들의 교육이 항상 승리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교육받은 신념이 필승의 의지를 주고, 정의로운 신념을 굳게 가진 병사들의 높은 [[사기]]와 [[정신력]]이 그렇지 못한 병사들의 집단보다 훨씬 효율적인 전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전문적인 정훈교육은 분명 가치가 있는 활동이다. [[2차대전]] 시기 연합군의 일원으로 소련군에 파견되어 정치장교를 목격한 서방권 군인들도 소련군 정치장교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병사들은 정치장교를 무섭게 생각하기는 커녕, 오히려 서방국가의 [[군종장교|채플린]] 혹은 [[공보정훈장교]]와 같은 존재로 생각했다고 한다. 사실 둘이 하는 일도 비슷하다. [[전사(죽음)|전사자]]에 대한 [[장례식]]을 주관하고, 개인적 상담을 받아주기도 하고, 글을 모르는 [[까막눈]] 병사들의 [[편지]]를 대신 읽어주거나 써주기도 했다고 한다.[* 제정 시절에는 [[금수저|돈 많은]] [[부르주아|귀족 자제]]들만 교육의 특권을 누릴 수 있었고, [[농민]],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 정책은 그야말로 전무했다. 그래서 소련은 1922년부터 1937년까지 전국적인 문맹퇴치 캠페인을 벌여 30년대까지 대부분의 인민을 문해자로 만들었다. 50년대에 이르면 소련의 문해율은 거의 100%에 달하게 된다.] [[유발 하라리]]의 저작인 《[[사피엔스]]》에서는 흔히 '이념'으로 분류되는 자유주의, 사회주의, 파시즘도 초인적 미래 질서를 규정한, 불교와 같은 훌륭한 종교로 규정하며 정치장교는 군종장교 그 자체로 정의한다. 또한 정치장교가 후방에 안전히 머무르며 전투를 관람했을 것이라는 일반적 편견과는 달리 이들은 '''병사의 모범이 되어야 했기에 돌격시 먼저 진두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사상율도 일반 장교보다 더 높았다고 한다. 실제로 2차대전 당시에도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모든 당원은 다른 병사보다 더 앞서서 싸우라"는 강령이 내려오기도 했으며,[* 본래 소대장, 중대장 등 소부대 지휘를 맡은 초급 장교들의 사상율은 오히려 일반 병사들보다 훨씬 높다. 정치장교처럼 부하들을 이끌고 진두에 서서 지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100% 당원이었을 정치장교 역시 이런 명령을 당연히 따랐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