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통제 (문단 편집) === [[탈문의 변]]으로 중조(重祚)하다.[* [[복벽]]은 [[왕정 복고]]와 같은 뜻으로 쓰이므로 다시 즉위하는 것을 따로 뜻하는 재조(再祚)나 중조가 적절하다.] === 이렇게 정통제가 유폐되자, 조정은 정통제 일파와 경태제 일파로 나뉘었다. 경태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래 황태자였던 정통제의 아들 [[성화제|주견심]]을 폐하고, 자신의 아들인 주견제를 황태자로 책봉하였지만 태자는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리고 1457년 1월 황제가 병을 앓아 누워 있는 중에 대장 석형(石亨), 태감 조길상(曹吉祥), 대신 서유정(徐有貞)이 정변을 일으켰고 경태제는 폐위되었다. 폐위된 지 한 달 후에 병사했다.[* 여담으로 정변 과정이 좀 황당하다. 석형과 조길상이 정통제가 유폐되어 있던 남궁 문을 부숴서 정통제를 빼낸 다음 군대를 이끌고 동화문([[자금성]]의 동문) 앞에 나타나자 병사들이 경계태세를 갖추었는데 태상황이던 정통제가 앞으로 나와 '''"짐이 태상황이니라!"'''라고 외치자 경비병들이 일제히 무장을 해제하고 궁궐 문을 열어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그렇게 정통제는 다시 황제의 자리에 돌아왔지만 이전 연호를 그대로 쓰지 않고 천순이라는 새로운 연호를 내걸었다.[* 본래 중국에서는 황제가 바뀌면 이듬해에 예고한 연호로 개원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경태 연호를 천순 연호로 개원할 때는 정통제가 경태제를 폐위하고 복위한 사정상 정통제의 복위 후 곧바로 천순 연호로 개원하였다. 다만 경태 연호 자체는 무효화되지 않아 경태제 재위 기간의 연도를 계속 경태 연호로 표기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